네이버의 술마켓에서 구매한 구절초꽃술을 마셔 보았다. 이번 주도 상당히 음주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여전히 소맥과 싸구려 국산 위스키를 때려 마셨다. 차라리 이런 술을 막 마시면 좋을텐데... 아쉬움이 컸다. 아니면 와인을 마셔도 좋고... 하지만 뭐 소맥과 국산 위스키도 뭐 그 나름의 때려마시는 재미가 있기는 한데,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은 채 알콜만 소비하는 것은 진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강남의 한 한우 집에 가서 한정식 한우 코스를 먹던 도중, 소맥이 본격적으로 잔이 돌기 시작할 때 즈음에 이 술을 꺼냈다.
"이거 한 번 같이 나누어 드시죠. 선물 받은 거 가져왔어요"
나처럼 막걸리를 찾아 마시는 사람이 아니면 다소 낯설 수 있는 술을 꺼내자 모두 꽤 신기해 하는 눈치였다. 다들 나름 주당들인데, 그래서 그런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귀여웠다.
"잔이 마땅치 않은데, 일단 여기 맥주잔에 따라 마실까?"
와인을 마시다 보면 술이란 게 은근히 또 어디에 따라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는데, 막걸리의 장점 중 하나는 이게 태생이 집에서 빚어서 즐기는 농촌의 술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도 고위층은 약주나 소주를 마셨다고 한다), 아무데나 깨끗한 잔에 따라 마시면 크게 용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 마신 구절초꽃술도 맥주잔에 따라 캐주얼하게 즐겼지만, 정말 맛있었다.
먼저 맛이다. 생각보다 누룩의 맛이 강하고, 단맛은 크게 절제된 그런 술이었다. 약간 곱게 느껴지는 곡향(穀香)이 퍼지면서 고소한 맛과 함게 잘 익은 누룩의 치즈맛이 어우러진다. 구절초 꽃의 향과 꽃잎의 약간 과일 껍질에서 느껴지는 예쁜 쌉쌀함이 느껴졌다.
딱 떠오른 건, 희양산 막걸리였다. 나에게 역시 누룩맛, 하면 희양산 막걸리가 가장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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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희양산 막걸리 15도 (경북 문경 두술도가)
솔직히 이 구절초꽃술은 한우와 잘 어울리는 술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히 혼자 즐기거나, 아니면 조금 더 식물성 안주와 함께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술 안에서 풍겨나오는 깊은 풍미가 상당히 매력적인데, 느끼한 고기와 함께 마시니 약간 그 향과 맛이 금방 사그러지는 것 같았다. 특히 묵직하고 풀향기를 더해주는 꽃향기와 그 맛이 약간 너무 아쉽게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향은 꽤 강한 편이다. 구절초꽃 특유의 향기와 함께 아주 독특한 누룩의 발효된 향이 코를 자극한다. 같이 술을 마신 사람들이, "음~ 약간 꼬릿한게 아주 좋은데?" 하고 언급했다. 약간 보르도 와인의 말똥 냄새와도 유사한 향이 재미있었다. 이 구절초꽃술을 만드는 양조장인 '한통술'을 취재한 한경매거진의 기사를 보니, "왕에게 진상하는 어주(御酒)를 만들 때 쓰는 특별한 누룩 ‘향온곡’을 가지고 빚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누룩과 다르게 밀과 보리를 넣어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기로운 왕의 술 '한통의 구절초꽃·연꽃술'> 한경 Business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108258039b
이 술은 세 번을 덧대어 만든 술 (삼양주)이다. 시간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맛과 풍미가 크게 올라간다. 지금까지 마셔본 삼양주는 아래와 같은 술들이 있는데, 정말 하나같이 훌륭했다.
<삼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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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꽃술은 탄산이 거의 없고, 바디감은 묵직한 편이다. 중간보다 무겁고 녹진하다. 지게미도 많이 느낄 수 있고 상당히 리치한 느낌이 드는 그런 질감이다. 상당히 부드러운 텍스처를 가지고 있으며, 끈적이지도 않는다. 고급스러운 질감을 가진 술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딱 보면 약간 고집스럽고 또 정성스러운 주조 과정이 색깔과 절묘한 탁도에서도 잘 드러나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막걸리를 많이 접해 봐서인가, 왠지 이 황회색이 감도는 짙은 아이보리색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대를 품게 되는 것 같고, 항상 이 즐거운 예감은 적중해 왔다.
이런 술을 접할 때마다, 우리 술의 미래가 밝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은 술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이런 술이 하나 하나 늘어갈 때마다 또다른 미래가 하나씩 그 문을 열어 준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좋은 술을 만드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조금이나마 이렇게 글로, 또 모임에 실제 술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응원하며 우리 술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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