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주)장희 (장희도가)에서 나온 술이다. 이 세종대왕 어주가 만들어지는 ‘장희도가’는 장정수, 김주희 명인 부부가 장정수 명인의 고향인 청주 쪽으로 귀촌하여 설립한 양조장이다. 명인 부부가 10년에 가까운 귀촌 준비 기간과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2011년 설립한 장희도가에서는 약주와 탁주가 주조된다. 그중에서도 ‘세종대왕 어주 약주’는 60일간 저온 숙성기간을 거쳐 완성되는 삼양주(3회 발효)로 발효와 숙성에만 90일이 걸린다고 한다. 확실히 바디감이 느껴지고, 곱게 숙성된 깊은 향과 맛이 삼양주 이상의 술에서만 느껴지는 고급스러움과 묵직하고 꽉 찬 느낌을 선사해 주는 그런 막걸리다.
찹쌀과 멥쌀, 누룩과 물로 만드는 이 세종대왕 어주는 세종 때 어의 전순의가 지은 책인 <산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 벽향주의 주방문(술을 만드는 법을 지은 조리서)를 그대로 따라 빚은 술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역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흥미도 생기고 기대감도 매우 큰 법이다. 추석 직전에 세종대왕 어주의 약주와 탁주 세트를 샀는데, 아껴두다가 먼저 탁주부터 맛을 보았다.
아, 분명히 장르를 묶어 낼 수 있는 아주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천비향, 신동막걸리, 이상헌막걸리, 풍정사계 등 15000원대를 넘어가고 도수도 높은 그런 막걸리들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럽고 밀키한 그런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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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드라이한 편이나, 단맛, 신맛이 모두 존재감이 넘치게 느껴지는 층이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절제된 단맛을 넘어서서 복잡하고 풍부한 맛들을 하나 하나 느끼다 보면 뒷맛에 알콜의 킥 (이 세종대왕 어주 탁주는 13도 짜리 술이다) 과 함께 찾아오는 매콤함, 이 매콤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이대로 뚜껑을 개봉하고 1주일 정도에 걸쳐 천천히 마시면, 냉장고 안에 두어도 발효가 지속되면서 술 맛이 미묘하게 변해나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단맛을 점점 줄어들고, 치즈처럼 녹진한 맛이 계속 더 강해진다 .쌀은 더 쌉쌀하고 고소하게 승화되고 매콤함이 더 강해진다.
이 술 역시, 내가 존경하는 조선일보의 박순욱 기자님께서 기사로 다루어 주었다. 관심있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 보기 바란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0/2020012001112.html
이 기사에서도 지적하는 것처럼, 이 세종대왕 어주 탁주는 향이 아주 매력적이다. 와인처럼 저온에서 숙성시키면서 2차적인 아로마가 생성되어 치즈향, 꽃향기, 들풀향기, 그리고 쌀 막걸리의 특징인 과실향도 끝 향으로 스쳐 지나간다. 상당히 향이 고급스러운 술이다. 이 정도로 귀한 향을 가지는 막걸리(탁주)는 정말 드물다. 향 측면에서는 정말 손꼽을 만한 술이라고 생각한다.
질감은 탄산이 거의 없고, 밀키한 질감이다. 다소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으며, 알콜의 킥도 살짝 남아 있다. 벌컥벌컥 들이키기 보다는 조금씩 향을 음미하며 입에서 굴리기 좋은 그런 술이다. 술의 첫잔부터 끝잔까지 지게미가 비교적 균일하게 잘 섞이는 편이며, 누군가 스웨이드 같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동의하는 편이다. 기분 좋은 뻑뻑함이 잘 유지되는 느낌이다.
막걸리는 정말 많은 가능성을 가진 술이다. 아마 지금보다는 앞으로 훨씬 더 그 가능성과 매력을 더 높이 인정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막걸리들을 만날 수 있도록, 이런 기록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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