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첫 잔을 마시고 눈이 딱 트이는 경험을 해 봤는가? 나는 가끔 이런 경험을 하는데 이번에 마신 지평 생 막걸리 옛막걸리도 딱 그랬다.
감각적인 주황색 라벨이 매력적인 이 지평 생막걸리 옛막걸리는, 요즘 대세를 이루는 쌀막걸리가 아닌, 밀막걸리라고 한다. 과거 쌀이 귀하던 시절엔 쌀이 아니라 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때의 레시피를 살려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지평막걸리는 다른 막걸리와 달리 5%로 만든다. 지평주조에서는 이것이 막걸리 맛을 제일 좋게 만드는 도수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평은 정말 맛이 좋기때문에 지평막걸리에 관해서는 이 5%설을 인정한다.
먼저 맛이다. 밀 막걸리 특유의 걸쭉함과 달콤함이 잘 느껴진다. 그러나 새콤한 맛이 단맛과 잘 밸런스를 이루면서, 막걸리에 청량감을 더한다. 약간 뻑뻑하고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부드럽고 과실향 넘치는 쌀막걸리와는 확실히 다르고, 좀 더 투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세련된 지평답게, 이 투박함을 그냥 두지 않았다. 최대한 정성을 들여 곱게 빚어 낸 느낌이 든다. 이 또한 묘하게 재미있는 맛을 연출한다. 분명히 섬세함과 세련됨을 갖춘 정성 들인 술인데, 술의 몸 자체가 아주 터프하고 농주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이건 단순히 미각, 즉 혀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 막걸리 자체를 좋아하고 많이 마셔 본 경험과 기억이 있어야 미각, 후각, 그리고 질감이 함께 작용해서 한번에 딱 다가오는 묘한 갭에 의한 쾌감이라고 할 만 하다.
향기도 재미있다. 밀 막걸리 특유의 진한 빵냄새에 더해서, 깨끗하게 발효된 누룩향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막걸리 특유의 달큰한 냄새가 다소 절제되어있고, 오히려 곡식(밀)과 물에서 유래한 재료의 향이 두드러진다. 지평 막걸리는 다른 술도 향이 꽤 괜찮았다. 역시 젋은 사장이 확실히 트렌드도 잘 읽지만, 아마 더 풍요로운 환경을 경험해서인지 술의 향과 질감 같은 부분의 퀄리티도 신경을 쓸 줄 아시는 것같다.
질감 역시 적당히 뻑뻑하면서 중간 정도의 바디감을 유지한다. 너무 묽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게 쓰윽 입에 존재감을 주며 지나간다. 정말 음악 중에도 일하면서 들으면 능률이 올라가는 노동요가 있듯이 (장르불문하고 말이다), 뭔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할 때 한 잔 마시면 시원하게 스트레스와 피로를 날려 줄 것 같은 질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술도 참 간만에 만나 보는 것 같다.
지평주조의 성공담은 여기저기서 기사화도 많이 되었지만, 확실히 여기는 술을 잘 만드는 곳인것 같다. 지평주조에서 나온 다른 술들에 대한 리뷰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2022.06.21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지평 이랑이랑 막걸리
2022.01.30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지평 생막걸리
2022.04.01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지평 일구이오
'Useful Things > 술 추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 추천: 세종대왕 어주 탁주 (장희도가) (2) | 2022.09.24 |
---|---|
술 추천: 아홉쌀 막걸리 (한아양조) (0) | 2022.09.22 |
술 추천: 버터 막걸리 - 블랑제리뵈르 버터 막걸리 (BEURRE 막걸리) (0) | 2022.09.15 |
술 추천: 산양 생 막걸리 (통영) (1) | 2022.09.13 |
술 추천: 생탁 (부산) (0) | 2022.09.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