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주 맛있는 막걸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너무 멋을 부린 라벨이나 작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내 맛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윽한 단맛과, 8%라는 도수에 어울리는 알싸한 알코올 킥, 약간의 산미와 순수한 술의 맛이 모여서 좋은 밸런스의 맛을 만든다. 최근에 마셨던 높은 도수 막걸리 중에, 가장 두터운 맛을 가진 것 같다.
이 하얀까마귀가 나온 오산양조장은 지역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다는 '마을 양조장'이라는 컨셉으로 독특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양조장의 건물도 매우 세련되었고, 오산시의 유일한 양조장이라는 것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나오는 술의 품질을 보았을 때, 꽤 제대로 운영되는 곳으로 보이는데도 의외로 전통이 길지 않다. 한경에서 가볍기는 해도 좋은 기사를 내서 커버하고 있으니 한 번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110197601b
맛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 막걸리도 개성이 풍부하다. 다만 칭찬할 점은 기존 막걸리들에서 일부러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물과 쌀, 그리고 누룩이라는 순수한 재료만을 사용해서 기존 막걸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한 단계 깊어지고 더욱 성숙한 맛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탄산이 좀 약하다는 것만 빼고는, 기존의 일반적인 장수 막걸리나 지평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위화감이나 부담 없이 바로 맛을 즐길 수 있는 막걸리라고 생각한다.
단맛이 강한 편이지만, 튀지 않는다. 그냥 마실거리 - 즉 차 처럼 안주 없이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막걸리다. 전내기 같은 짙은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묵직하고 존재감 있는 술이다. 충분히 그윽하고, 충분히 진하다. 오산양조에서 나오는 다른 막걸리도 꼭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향 또한 상쾌하고, 강하다. 나는 역시 술은 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오산양조의 하얀까마귀는 향의 측면에서도 분명한 장점을 갖추었다. 깔끔하게 잘 만든 술이라서 그런지 향 또한 잡내가 적고, '자연스러운' 향긋함이 배가되었다. 맛이나 향 자체는 약간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 - 살짝 가양주 연구소 스타일 또는 나루 생막걸리 스타일 - 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옛날 막걸리의 정체성을 갖춘 점이 매력적이다.
질감은 아까 전내기 (물을 타지 않은 걸쭉한 막걸리) 이야기를 했듯이, 상당히 바디감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8%라는 알콜 도수에 걸맞게 나름대로의 무게감과 킥도 있다. 아주 재미있는 질감을 가졌다. 이 정도 수준의 막걸리와 견줄 수 있는 것은 배혜정도가의 우곡생주 정도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2022.04.18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우곡생주 배혜정도가
막걸리가 최근 인기가 많아졌다고 한다. 원래는 '쌀'이라는 다소 비싼 재료에, 전통 누룩이라는 품질이 통일되기 어려운 누룩을 사용하여 만들던 막걸리가, 일제시대 이후 품질이 균일한 개량 누룩 (솔직히 약간 일본식 누룩임을 부정할 수 없다)을 사용하고, 산업화를 통해 쌀을 풍족하게 생산하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막걸리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보면 막걸리는 참 대한민국의 역사를 닮은 술이라고도 생각되어 한 층 애착이 생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 이후 독자적인 발전을 하면서 재미있는 기업, 아티스트 등을 배출하고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했던 것처럼, 막걸리도 지금 그러한 변모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고 영화가 계속될 수는 없을 테고, 또 무엇이든지 완벽하기만 한 것은 없지만, 막걸리가 계속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언젠가 지금의 한계를 또 넘어서서 더 훌륭한 '술'로 진화해 나갈 막걸리의 여정이 정말 궁금하고, 이런 하얀까마귀 같은 훌륭한 작품들이 그 길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고 있다고 본다.
오산에 갈 수 있으면 양조장에 들려도 좋을 것이고, 아니면 인터넷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꼭 한 번 마셔보기를 권한다. 나는 네이버에서 찾은 '술마켓'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구해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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