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막걸리(탁주)를 제외하고는 그리 즐겨 마시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 보면 상당히 좋은 양조장들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신중하게 조금씩 시도를 해 보고 있다.
이전 리뷰한 '보은주'라고 하는 탁주를 만드는 충북 충주의 중원당에서 나온 약주를 마셔 볼 기회가 있어 이번에 한 번 마셔 보았다. 보은주의 리뷰는 아래를 참조하기 바란다.
2023.03.10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보은주 (충북 충주)
이 청명주는 '중원당'이라고 하는 양조장에서 나오며, 이 중원당의 대표적인 플래그십 (flagship) 제품이다. 중원당의 홈페이지명도 심지어 http://중원당.com/ 으로 되어 있다.
이 중원당은 2022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이 때 같은 행사에서 위에서 소개한 보은주가 '탁주 부문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먼저 맛이다. 확실히 이 술은 공들여 만든 티가 나는 술이었다. 매운 음식과 함께 곁들였는데 상당히 깊은 맛이 느껴졌다. 중원당은 충북 무형문화재 2호로서, 1896년에 개업을 했다고 하는데, 이 청명주는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절(淸明節)에 담그는 술이어서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명절에 담그는 만큼 물을 매우 신경써서 쓴다고 하며 (청명에 담그는 이유 자체가 그 즈음의 물로 빚은 술이 맛과 색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좋은 물을 쓰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다소 달콤한 맛이 강한 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당감이 남지도 않았고, 맛이 참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술을 기억한다면, 역시 단맛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 점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 술을 별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를 이야기 하자면, 바로 이런 '단맛'이 너무 강한 것이 첫번째 이유라고 할 것이다. 달다. 정말 달다. 차라리 막걸리같이 데일리로 편하게 즐긴다면 이 단맛도 괜찮지만, 이렇게 도수가 17%까지 올라가는 약주나 청주 같은 장르에서도 달다면 그 취향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개중에 드라이한 술도 있고, 다양한 맛을 첨가하는 등의 시도를 하는 술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술까지 단맛이 제일 도드라진다면, 역시 우리 술은 '달콤한 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여전히, 단맛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부담스럽고 유치한 단맛이 아니라, 기분이 좋고 은은하지만 강한 뉘앙스의 단맛이 참 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알콜이 17도나 되는데도 전혀 쓰거나 괴롭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그리고 누룩 또한 아주 좋은 것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잘 발효된 누룩의 치즈향이 단맛의 심층부에서 조용하고 힘있게 피어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뉘앙스의 약주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개성이 있다. 확실히 풍정사계 (화양양조장)나 세종대왕 어주 (장희도가), 천비향 (좋은술)과 비교되는 개성이 있다. 중간이 이 청명주를 마시면서 여여 (지리산옛술도가, 꽃잠 막걸리를 만드는 곳)라는 약주를 함께 시음했는데, 여여의 홍차같은 맛과 대조되어 이 청명주의 약주다움과 달콤함, 그리고 귀여운 산미가 더욱 선명히 느껴졌다. 여여도 훌륭한 술이고, 청명주도 역시 좋은 술이다.
향도 매우 좋았다. 한 잔, 한 잔 따라 마실 때마다 마치 와인처럼 절로 술잔에 코가 가게 만드는 그런 술이었다. 달달한 향 너머로 논이 널리 펴져 있는 농촌에서 초여름에 느낄 수 있는 곡식이 푸릇하게 익어가는 향기 같은 것이 같이 느껴진다. 살짝 흙 냄새가 나는 듯도 하고, 마지막은 까놓은 생 견과루 (밤이나 땅콩) 의 단단하고 고소한 향이 감도는 것이 재미있었다.
질감은 어느 정도 바디감이 있는 편이었다. 알콜도 17도나 되고, 또 역시 달콤하기 때문에 액체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 끈적이고 녹진한 느낌도 있다. 존재감은 확실한 한 잔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약주는 질감을 즐기기에는 조금 장르가 다른 술이라고 생각한다. 탄산이 있거나 목넘김이 중요한 술도 아니고, 와인처럼 어느정도 볼륨이 있는 큰 컵에 따라마시는 술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스키나 소주 처럼 확실하게 도수가 높은 증류주도 아니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음료로서 질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어쩌면 우리 약주도 조금 더 묽게 만든다면 충분히 와인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일본의 사케는 와인잔에 따라 와인처럼 마시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마시고 나서 잔과 병을 쥐었던 손에 끈적임이 남는 것이 아쉽다. 다시 한 번 처음에 말했던 '단 맛'이 여전히 나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물티슈에 손을 닦고 좋은 점만 기억해 보려 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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