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에 다녀올 일이 있어 그 쪽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들을 사 왔다. 경남 하동은 전남 구례와 경계하고 있어 영남과 호남이 섬진강을 끼고 어우러지는 화개장터가 있는 고장이다.
막걸리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 생긴 좋은 점이 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설렌다는 것이다.
특히 전남, 경남 같이 거리가 좀 있는 지방의 막걸리는 유통 문제상 서울에 잘 없으니, 그 쪽 지역 갈 일이 생기면 정말 뭐든지 마셔 보려고 하는 입장이다.
이번에 만난 하동 녹차 막걸리는 두가지 점에서 흥미로웠다.
1. 흔히 섞는 맛이 강한 식품 (각종 과일이나 인삼)이 아니라, '녹차'를 추가했다는 점
2. 맛을 첨가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살균탁주가 아니라 생 '탁주'라는 점
특히 2. 같은 것은 정말 드물다. 얼마 전 리뷰한 문경 오미자 막걸리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보지 못했다.
2022.12.25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오미자 생막걸리 (문경주조)
살펴 보니, 왜 녹차가 섞여 있나 하니, 알고 보니 이 하동 지역에서는 야생차 문화 축제라는 것을 하는 것 같다. 즉, 차가 생산되는 고장인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여유가 없는 당일치기에서 제대로 된 식도락을 못했는데, 다음에는 꼭 제대로 돌아 보고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하동 녹차 막걸리에도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에 대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하동 녹차 막걸리도 나름 인상깊은 술이었다. 녹차와 함께 섞이니 말차라떼 같은 느낌이 났다.
생각해 보니, 막걸리의 밀키한 느낌을 생각해 보면, 녹차 + 막걸리의 조합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 지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막걸리의 달콤함과 텁텁함에 녹차의 고급스러운 씁쓸함이 더해지면서 훨씬 즐기기 좋은 술이 탄생했다. 이 술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라벨에 있는 품목보고번호가 201300161742 인걸로 보아서 적어도 2013년 이후 10년째 팔리고 있는 것을 확인해서 안심했다. 이런 혁신적인 막걸리가 경남 하동군에서 생산되고 있다니 정말 기뻤다.
우선 맛이다. 기본은 장수 막걸리와 같은 가성비 막걸리의 특징을 잘 갖춘 맛이었다. 아스파탐이 주도하는 뚝 떨어지는 단맛이 기본이고, 쌀 막걸리의 고소한 풍미가 잘 어우러졌다. 게다가 뚝 떨어져서 맛의 낙차와 함께 공백이 생기는 그 허전한 지점을, 녹차의 씁쓸한 향취가 딱 채워준다. 아주 clever함 (영리함)마저 느껴지는 막걸리다. 촌스러운 외관 뒤에 숨겨진 타고난 센스를 느끼는 지점이다.
향 또한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녹차 향이 더해 지니 이게 또 재미있었다. 정말 말차라떼 같은, 그런 향이 더해졌다. 확실히 개성적인 향이다. 이전 마셨던 대마가 섞인 막걸리 chill with me (칠위드미)와도 약간 비슷한 느낌인데, 그보다 좀 더 순수한 느낌이다.
2023.01.23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칠위드미 (Chill With Me, 강원 홍천)
질감 또한 시원하고 라이트했다. 2000원 미만인 가성비 막걸리인 만큼 질감 상은 특별한 게 없었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이 있어 좋았다. 탄산은 약한 편인데, 오히려 녹차 맛이 있는 만큼, 탄산이 너무 강해도 이상할 것 같았다. 6도짜리 기본 막걸리인만큼 알콜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녹차 맛에 눌려 알콜 부담 없이 마구 마시기 좋을 것 같았다.
재미나고 특이한 막걸리를 만나면 늘 기분이 좋다. 특히 이런 막걸리는 2천원 미만에 마시고 있으면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술 문화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아직은 서민+농경중심 사회의 느낌이 희미하게나마 남은 느낌이다. 언젠가는 이런 막걸리도 모두 사라지고 프리미엄 막걸리만 남아서 마치 와인처럼 제일 싼게 7천원이 되는 술이 된다면, 그건 그대로 우리 술문화의 고급화를 위해 또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많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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