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근처에 방문했다가 파주지역특산물 센터에 들려 임진강 쌀 막걸리를 구매했다. 막걸리에 취미를 들인 후 좋은 점 하나는 전국 어디를 가든 어떤 새로운 막걸리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행한 우리 현대사로 인해 임진강 유역 민통선 부근은 대표적인 청정지역이다. 이 지역의 쌀과 물로 만든 막걸리는 재료 하나는 청정하고 훌륭한 막걸리가 아닐까 생각하며 한 병 집어들었다. 얼른 뒷면을 보면서 재료를 확인 했을 때, 파주멥쌀, 파주산 찹쌀, 우리밀 누룩만에 정제수만을 사용한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그리고 알콜 도수가 9% 짜리라는 것이 기뻤다.
일반적인 6도짜리 시골 막걸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제대로 만든 작품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마케팅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임진각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이 막걸리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 증폭되기만 했다.
휴일이지만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어 이것을 정리하고, 읽을 책 한권과 함께 위스키 글라스를 꺼냈다. 나는 14도짜리 전내기나 아니면 잘 만든 막걸리의 경우 양은 그릇에 담아 마시지 않고, 위스키 잔에 담아 마신다. 그 편이 오히려 향도 즐기기 좋고, 맛도 음미하며 느끼기 좋기 때문이다.
이 임진각 쌀 막걸리는 정말 정통 막걸리 그 자체였다. 살짝 드라이한 편이어서 이전에 리뷰한 이상헌 탁주의 느낌마저 났다.
2022.07.16 - [Useful Things/술 추천] - 이상헌 탁주 14도
2022.07.13 - [Useful Things/술 추천] - 이상헌 탁주 19도
그러나 이상헌 탁주만큼 맛이 어렵지는 않고, 적절히 단맛과 새콤함이 조화된 그런 맛있는 막걸리였다. 후미 (끝맛)으로 올라오는 쌉살함과 알콜감, 그리고 이 둘의 조화에서 터져 나오는 매콤함이 또 일품이었다. 막걸리도 정말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술이라는 걸 이런 잘 만든 술을 마실때마다 새삼 느낀다.
이 술은 향도 좋았다. 백걸리, 청주 앙성 막걸리에 이어 요새는 연이어 향이 좋은 막걸리만 마신다.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곡식의 고소함과 누룩의 치즈같은 발효향이 좋은 향기를 유지하며 섞이고, 그 뒤에 희미하게 풋풋한 과일향이 느껴진다. 단맛이 강한 다른 프리미엄 막걸리처럼 확실하고 센 바나나,메론 이런 향은 아니지만 과일의 청명하고 달콤한 향이 느껴져 매혹적이다.
질감은 다소 바디감이 있는 편이다. 꾸덕한 편은 아닌데, 지게미 쌀가루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마시고 나면 약간의 포만감도 든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에 신경을 쓴 질감이다. 술 도수가 일반적 막걸리 대비 다소 높은데도 쏘는 느낌이나 탄산의 터지는 느낌은 거의 없다. 부드럽고 묵직한 그런 막걸리다.
전국에는 참 많은 막걸리가 있다. 쉽게 쉽게 소비되고 싼 술이라는 이미지 속에 정말 싸게싸게 만들어지는 그런 막걸리도 많지만, 재료의 고급스러움과 들이는 정성에 따라 상당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 우리 막걸리다. 와인이든 위스키든 막걸리든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가 별로면 추천도 하지 않고 평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엔 정말 좋은 막걸리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찾아다니는 것도 있겠지만, 막걸리 산업도 과거에서 탈피해서 변화와 발전, 혁신을 꾀하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막걸리들을 만나며 지평를 넓혀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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