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Useful Things/술 추천

술 추천: 태화루 막걸리 (울산)

by FarEastReader 2022. 1. 31.
728x90
반응형

경주 인근을 들러 마트를 가보니, 태화루 생 쌀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조금 알아 보니, 울산 지역에서는 막걸리 하면 이 태화루 막걸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만큼, 울산 지역을 꽉 잡고 있는 막걸리라고 하여 구매해 보았다.

 

사실 울산도 현대중공업을 위시한 큰 산업단지가 있어 외지인 비율도 꽤 높을 텐데, 그 지역에서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가진 술이 있다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다 짐작했고, 역시 마셔 보니 이 블로그에 올라올 만한 개성과 장점이 풍부한 술이었다.

 

같은 막걸리라도 언제, 어디에서 마시느냐에 따라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막걸리 뿐만이 아니다. 모든 술이 사실 그렇고, 술 뿐만이 아니라 음식도 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막걸리도 참 장소를 많이 타는 술인 것 같다.

 

이번 태화루 막걸리는 시골 산에서 주로 마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정취가 있게 느껴졌다.

바깥의 깨끗하고 맑은 겨울 공기와 접촉해서 그런지 차가운 막걸리가 더 시원하게 느껴졌고, 또 맛도 좀 더 잘 익은 것처럼 부드럽고 진하게 다가왔다.

 

우선 이 태화루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도드라진 신맛이었다. 내가 항상 이 태화루 막걸리를 마셔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블로그를 찾아 봐도 신맛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맛이 나는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장점을 말하자면, 연두색 계열의 병 디자인과 맛이 그나마 좀 어울린다는 점? 신맛이 약간 샤인머스킷의 달콤한 신맛이어서 그래도 나름의 개성과 풍미가 있었다는 점을 말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감칠맛이 있는 종류인 것 같다. 신맛은 살짝 탁주에서는 불협화음 같은 존재라고 느껴진다. 재즈 같은 음악에서 일부러 불협화음을 넣고 그 음악적 효과를 즐기듯이, 여기에도 일부러 신맛을 넣고 그것을 개성으로 삼았다면 정말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맛이 나면 나는 역시 '혹시 젖산을 잡는 일에 실패한 건가?' '제조나 유통과정에서 변질이 있었나?' 이런 의심부터 든다.

태화루 막걸리를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겠으나, 그 때 다시 마셔보고 신맛이 없었다면 이번에 마셨던 신맛은 단점으로 쳐야 공평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시 만난 태화루 막걸리에서 같은 신맛을 느낀다면, 나는 과감히 이 신맛을 이 태화루 막걸리의 개성이자 매력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다. 

 

태화루 막걸리에도 합성감미료는 첨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맛 자체에서 감미료 중심으로 맛을 잡은 싸구려 맛이 나지 않았다. 곡물에서 나오는 확실하고 단단한 달콤함이 있었고,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술은 다르구나 싶었다. 가끔 영세한 양조장의 저가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싼 느낌의 달콤함이 거슬리는 떄가 있는데, 이 태화루는 확실히 그런 허들 쯤은 아득히 넘어 있었다. 어쩌면 신맛 뒤에서 느껴지는 좋은 막걸리 특유의 풍부한 감칠맛 - 이것이 태화루 막걸리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향은 밖에서 맡아서 다소 집중해서 맡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요구르트의 새콤한 향, 달달한 누룩향이 잘 어우러지는 좋은 느낌의 술냄새였다. 이 향은 따라서 한 잔 할 때도 강하게 유지되었는데, 향이 유지되는 술이 드문 우리 전통 막걸리 계열에서는 드문 장점이었다. 어쩌면 신맛을 강하게 느낀 이유도, 이 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질감은 역시 탄산과 바디감을 따지는 것인데, 이 두가지 모두 강렬했다. 탄산도 상당히 강한 편이었고, 바디감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 (태화루 막걸리의 알콜함량은 일반적인 6%보다 낮은 5.5% 였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조직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바디가 있었다. 아마 알콜이 문제가 아니라 곡물을 잘 썼기에 나오는 개성이 아닌가 싶었다.

탄산 또한 약간 세게 느꼈는데, 울산이 바닷가라는 것, 그리고 이제 이 태화루의 주 소비층은 어쩌면 농민이 아니라 공업 및 제조업에 종사하는 공장 노동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맥주 대신에 막걸리로 시원하게 한잔 하려면 약간 탄산이 있는 편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 처럼 싸지만 즐기기 좋은 술이 또 있을까? 

막걸리가 한때 201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다가 다시 무너지고, 그리고 2020년 부터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싸구려 막걸리들이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전통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되고 나면 어쩌면 2000원 미만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롭게 표현하자면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맥주 한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에서 이렇게 아낌없이 맛을 즐기고 평하는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묵묵히 양조를 하는 여러 장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태화루 생 쌀막걸리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