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가져온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고른 와인을 마셔 보는 것도, 다른 사람이 고른 책을 읽는 것처럼 색다른 매력이 있다.
이번에 마신 산타 헬레나 버라이어어탈은 칠레 와인이다. 이 와인 역시 국내 마트에 들어와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데, 특이하게 이번에 마신 것은 2014년 빈티지였다.
2021년 11월 현재 보통 시중에는 하이트진로에서 유통하는 2018년 빈티지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우연히 잘 묵혀진 2014년 빈티지를 마셔볼 수 있었다.
이 와인의 포도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이다. 온난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이 포도는 달지 않고 개성이 있는 와인을 만든다고 알려져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자라지만, 자라는 곳마다 엄청 다른 특징과 맛을 낸다고 한다.
산타 헬레나는 칠레의 유명 와인너리로 Vina Santa Helena라고 쓴다. 1942년 설립된 칠레 대표적인 와이너리인데, 칠레에서도 5번째로 설립된 전통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실패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편히 즐길 수 있는 데일리와인, 즉 저가 와인 라인업에서는 이런 칠레나 스페인, 호주 같은 곳의 와인이 참 좋은 듯 하다. 여러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맛이 참 좋다.
이 와인은 우선 부드러운 바닐라의 풍미와 상큼한 포도 과실 향이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포도주스 같은 과실향이 많이 나는 와인은 과실항 특유의 가볍고 날카로운 신맛이 어쩔 수 없이 남는 게 일반적인데 이 산타 헬레나 버라이어탈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히 나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바닐라 같은 크리미한 (creamy) 부드러운 뒷맛이 특징이다.
다양한 와인을 의식적으로 마셔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소주나 맥주(발포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맛과 향이 정말 다 제각각이고, 보관 방법이나 장소에 따라서도 완전히 맛의 분위기가 바뀌는 와인과 달리, 정말 표준적이고 균일한 맛을 내는 그런 술에서 정말 산업화의 위력과 힘, 그리고 매력을 생각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압도적으로 싼 가격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술이 정말 우리나라, 그리고 전 세계의 산업화라고 하는 한 시대를 정말 잘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한 병 한 병 개성이 다른 와인과 같은 술이 다시 인기를 얻고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다가올 산업화 이후의 노동 해방과 풍요로운 시대를 이런 와인들이 상징할 수 있을까?
여튼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다시 이 와인으로 돌아가 보면, 이 와인은 쓴 탄닌도 적고 바디감도 단단하지는 않은 편이다. 정말 부드럽고 행복한 휴일 오후의 한 순간같이 평범하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그런 느낌이다.
일본어로 부드러운 맛을 표현하는 마로야까 (まろやか) 라는 표현이 있는데 딱 이 와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너무 달지 않지만 주스 같은 달달함과 혀를 부드럽게 감싸고 데워주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와인의 텍스쳐가 참 인상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와이너리나 양조장에 놀러가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뜨거운 햇빛 아래 와이너리에 놀러가서 기분 좋게 실컷 와인을 마시며 취해보고 싶다.
그런 상상을 하게 하는 이 산타 헬레나 버라이어탈 와인은, 와인이라는 말보다 '포도주'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친절하고 행복한 술이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과 다시 만나 흥겨이 포도주를 나누는 시기가 다시 올 때, 이 술을 함께 나누는 것도 꽤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인생은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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