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마시다 보면, 와인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누구와 마시냐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한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데 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마신 와인은 정말 다들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번에 마신 스페인 와인인 Hecula Monastrell Organic v.2020 (헤쿨라 모나스트렐 오가닉, 2020 빈티지)도 그런 자리에서 함께 마셨다.
이 와인은 스페인 중부지방인 예끌라(Yeclas) 지방에 위치한 와이너리인 보데가스 까스따뇨 (Bodegas Castano)에서 생산하는 가성비 와인이다. 모나스트렐 (Monastrell)은 프랑스의 무르베드르(Mourvèdre)와 동일한 품종으로써 다소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라고 한다. 이 Hecula Monastrell Organinc (헤쿨라 모나스트렐 오가닉)은 이 모나스트렐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실제 맛을 보면 우선 살짝 드라이한 맛으로 시작되는 것이 특징인데, 아주 화려한 꽃향기와 함께 달콤함이 거짓말처럼 퍼진다. 조금 예민한 사람은 그리 달지는 않고 향 때문에 달콤함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처음엔 단순히 달다고 느껴졌던 것이 아닌게 아니라 몇 잔을 곰곰히 맛을 보니 확실히 그리 달지는 않고 살짝 자두와 같은 계열의 달콤함이 블랙 베리류가 가지는 달기의 강도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즉, 달콤함이 존재하나, 그 농도가 옅은 것이다. 그에 비해 향은 상당히 스위트한 편이었다. 단 맛이 지나가고 나면 허브와 민트 계열의 약간 식물성이지만 화한 느낌의 푸릇함이 올라온다. 끝맛은 살짝 말린 고기와 후추, 즉 비프 자키와 같은 살짝 짭짤하고 건조한 맛이 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향은 확실히 화려하다. 꽃향기와 함께 향긋한 검은 베리류의 향이 아주 깊고 풍부하게 퍼진다. 살짝 향수 같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약간 배와 자두 같이 달콤한 과일의 향도 탄탄하게 허리를 받쳐 주는 느낌도 난다. 나는 스페인 와인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가격에 비해 정말 맛과 향이 좋은 것 같다. 프랑스 와인도 훌륭하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이런 과실향 풍부하고 좀더 오가닉한 느낌의 와인도 정말 좋다. '포도주'라는 한자어 이름과도 더 잘어울리는 것 같고, 음식과 곁들이기보다 술 자체를 차 처럼 음료로서 즐기는 데에 있어서 맛과 향을 음미할 때 더욱 즐거운 느낌이 든다. 약간 내추럴 와인이 왜 인기가 있는지와 맥락이 같은 기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맛이 쓴 편은 아니지만 탄닌의 존재감을 질감에서는 다소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씁쓸하게 남는 탄닌과 적당한 알콜감 (14.5도)이 기분 좋은 질감을 만들어 주고, 뒷맛을 아주 깔끔하게 잡아준다. 잔당감도 거의 느낄 수 없는데 피니쉬는 길게 여운을 주면서 남아 상당히 산뜻하게 만족스럽다.
참고로 헤쿨라 (Heclua)라는 이름은, 이 와인을 생산하는 예끌라(Yeclas) 지방의 로마시절 이름이라고 한다. 늘 와인을 마실 때마다 서구문명을 생각하는 나는 이 이름이 매우 뜻깊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술을 좋아하는 것도, 특히 와인이나 위스키, 그리고 막걸리같이 전통과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술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 실용적일 수도 있는 취향이지만 이렇게 힘 닿는 대로 체험하고, 느끼고, 공부하며 조금씩 쌓아가고 싶다. 조금 더 일찍 이런 세계를 알고 부지런히 공부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울 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더 좋은 일을 하고 더 가치 있는 정보와 실적을 내 보고 싶다. 훌륭한 와인을 마시며 정말 이런 의욕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많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꿋꿋하게, 또 배우는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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