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찾는 당산/선유도의 한 음식점에서 최근에 알게된 와인 애호가 분들과 술을 마셨다. 이 가게는 음식 가격은 싸지만 와인 가격은 결코 싸지 않은데, 그래도 사장님의 설명이 좋고, 자리가 아늑하여 기회가 있으면 자리를 만들어 방문하곤 한다. 좀 더 여럿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저가 와인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때로 프랑스산 와인이나, 오래된 와인도 눈에 띄는 그런 곳이다. 이번에 마신 것은 칠레산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에라주리즈 맥스 카베르네 소비뇽 2020 (Errazuriz Max Cabernet Sauvignon 2020 vintage)이었다. 역시 사장님의 추천작이다.
이 와인은 나름 와인킹 채널에서도 좋은 와인으로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여기 등장한 것은 2017년 산이지만 말이다).
먼저 맛이다. 술을 따라 놓고 마신 첫 잔은 생각보다 아주 산미가 강한 느낌이었다. 드라이한 첫 인상이었고, 또 약간 모과향이 강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30분 정도 피자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속도를 조절하면서 와인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그 다음에 한 잔 따라 먹자, 완전히 또 다른 느낌의 개성이 나타났다. 약간 고구마 같은 달콤함이 느껴지고, 적당한 탄닌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졌다.
향 또한 재미있었다. 약간 톡 쏘는 듯한 후추나 화약향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그 뒤에 포도와 자두의 향, 그리고 모과 향, 흐릿한 풀 향기가 예쁘게 뒤섞이는 느낌이었다. 바닐라의 힌트가 있고, 아까 풀 향기라고 이야기한 것은 약간 감초나 조금 향이 달콤한 그런 풀 향기였는데, 이 와인의 재미있는 특징처럼 여겨졌다.
전반적으로 향이 강하고 잘 퍼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알콜 도수는 13.5도로 그렇게 높지 않은데,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실향 그 자체 보다, 다른 복합적이고 2차적인 향들이 강한 것이 재미 있었다. 후추, 바닐라, 풀, 그리고 모과 향 등.. 사람들이 말하길 모과향이 강한 것이 칠레 까베르네 소비뇽의 특징이라고들 하는데, 정말 뭔가 유럽 술들과는 다르고, 또 북미의 캘리포니아와도 확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2020년 빈티지는 나름 이 에라주리즈 맥스 카베르네 소비뇽의 150주년을 맞이하는 빈티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부드러워지는 인상을 받았고, 이야기 하며 천천히 음미하기에 좋은 그런 와인이었다.
이 맥스 카베르네 소비뇽은 질감이 좋았다. 가게 사장님의 추천 대로 입 안에 넣고 혀를 와인으로 감싸서 전체적으로 맛을 보니, 상당히 혀를 쪼아 주는 그런 짜릿함이 강렬했다. 확실히 탄닌이 존재감이 있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매끄럽기보다는 살짝 표면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안에서 뭔가 풋풋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와인은 거의 인간과 몇천년을 같이 한 가장 오래된 술이라고 하는데, 정말 마시면 마실 수록 술의 왕은 와인이 아닐까 싶다. 매우 비싼 와인도 많지만, 싸고 맛있는 와인도 정말 많고, 늘 진짜 새롭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 가든 와인이 있다는 것도 정말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막걸리나 일본 소주도 엄청 좋아하지만 이건 한국, 일본 벗어나면 사실상 없는 술이 아닌가. 그러나 와인은 베트남을 가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가든, 중국을 가든, 폴란드를 가든, 독일을 가든, 미국을 가든 없는 곳이 없고 또 거기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와인들이 있다. 이런 면에서 정말 상상력을 자극하는 술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금요일에 이어 2주 연속 금요일마다 와인을 마셨는데, 매주 금요일을 와인 마시는 날로 지정해 볼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뭐 오버할 필요는 없지만 지평을 넓히는 의미에서 뭔가 좋은 취미가 될 것 같다. 진짜 공부와 의견 교환을 위해서라면 직접 만나지 않고도 zoom으로도 할 수 있을테고 말이다.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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