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에 있는 캐주얼한 와인바 옥탑문에서 이 와인을 만났다. 최근 와인에 흥미를 붙인 친구와 함께 이것 저것 사 마셔 보기로 한 후, 처음 만나 마신 와인이다.
여러 와인 리스트를 쭉 보는데, 재미있어 보이는 가성비 와인을 상당히 많이 갖춰 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소 가격은 비싸 보이는게 아쉽다면 아쉬웠지만, 좋은 리스트를 갖춘 와인바에 대한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기분좋게 프랑스 와인 중에서 이 와인을 골라 마셔 보았다.
카리냥 (Carrignan)은 개인적으로 내게는 낯선 품종이다. 조금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이름은 마수엘로(Mazuelo)이다. 북동 스페인에서 태어난 적포도 품종으로, 산도와 타닌이 높은 고급 품종이다. 그러나 프랑스 랑그독-루시옹에서 카리냥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생산되면서 그 위상이 희석되었다. 스페인 북동쪽 아라곤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에서는 카리녜나(Cariñena), 카탈루냐에서는 삼소(Samsó)라고 불린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공식 이름은 마수엘로이다. 현재는 프랑스의 재배량이 스페인의 9배가 넘으며 랑그독-루시옹이 프랑스 전체 재배량의 80%를 차지한다.
출처: http://mashija.com/카리냥-carignan/
이 카리냥 포도는 사실 생산성이 매우 좋은 품종이어서 실제 사막 같이 건조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품종이기 때문에 가뭄에도 잘 자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까리냥은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역사적으로도 품질이 낮은 벌크 와인을 만드는 데 씌였다고 한다. 위의 인용 문에서 '대량 생산되면서 그 위상이 희석되었다'라는 건 아마 그런 뜻이리라.
그렇지만, 이 엘레베는 분명 가성비 와인이긴 했어도, 꽤 아름다운 맛을 가진 와인이었다. 안주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곁들였는데, 피자와 정말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드라이하면서 체리류의 맛이 풍부하게 퍼지는게 진짜 매력적이었다. 산미가 살짝 강한데, 치즈의 부드럽고 진한 맛과 이 드라이한 산미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와인에선 드물게 맛에서 살짝 밀키함이 느껴지고,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지는데, 아마 향에서 짙게 풍기는 바닐라 향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탄닌 또한 강한 편인데, 아주 강한 건 아니지만, 중간 정도 이상의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달지 않고, 적절히 씁쓸한 와인, 이게 바로 엘레베 카리냥 2021 빈티지라고 생각한다.
향도 강한 편이다. 보르도 와인의 말똥향 같은 것은 거의 없고, 깔끔하고 상큼한 포도와 베리류의 향, 그리고 흐릿한 오크향, 부드럽고 예쁜 바닐라 향이 섞여서 풍기는데, 프랑스의 느낌 보다는 살짝 프랑스 바깥 지역의 다른 유럽 국가 와인의 느낌이 난다.
어쩌면 이 와인은 약간 젊고 세련된 와인이거나, 고고하고 우아한 와인이라기 보다는 살짝 어딘가 흐트러졌지만 매력적이고, 또 다가가기 쉽지만 생각보다 깊이가 있는 와인일지도 모르겠다. 막 최고급 와인이 아니더라도 때론 이런 좋은 와인 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참 와인의 폭과 깊이가 아닐까 싶다.
질감은 살짝 바디감이 있는 편이었다. 나름 묵직함을 갖추고 있었고, 알콜 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편은 아니어서 재미있었다. 알콜 도수는 사실 12.5%로 와인 치고는 살짝 낮은 편인데도 말이다. 전반적으로 매끄럽다기 보다는 살짝 투박한 느낌의 질감을 주었고, 사실 맛과 향보다는 질감 쪽에서 이 와인이 데일리 와인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가게에서 마시는 와인은 당연히 자리값을 포함하기에 비싸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 친구와 함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말 좋은 것 같다. 앞으로도 종종 여러 자리를 다니며 와인을 마셔 봐야겠다.
이제 다시 진짜 무더운 여름이다. 다시 한 번 태양의 생명력을 느끼며, 내가 마시는 것 이상을 벌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의욕을 가지고 삶에 매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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