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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ful Things/술 추천

간노꼬 보리소주 (Kannoko、神の河、かんのこ)

by FarEastReader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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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일본 소주를 참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근데 사실 종류도 정말 많고, 구하기도 힘들고 해서 서서히 멀어지긴 했었는데, 그 때 가고시마 고구마 소주의 대명사이자 일본 소주의 3대장이라고 불리웠던 3M (모리이조 森伊蔵 Mori-izo, 무라오 村尾 Murao, 마오魔王 Mao) 같은 술을 마셔보고 진짜 깊게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전 서울 시내의 한 일식 복어 전문점에서 간만에 일본 소주를 마셨다. 쌀로 만드는 소주가 주류인 우리와 달리, 일본은 고구마, 감자, 보리 이런 걸로 소주를 만들어 마시는데, 이번에 마신 소주는 간노꼬 라는 보리 소주였다.

 

3년 정도 숙성을 시킨 소주라고 하는데, 역시 숙성 기간이 아무래도 있는 만큼 진하고 풍만한 향기가 매혹적이었다. 약간 푹신하게 감싸주면서 퍼져나가는, 일본말로 후쿠요카(ふくよかな)한 향기...위스키와 달리 또 동양 술만의 부드럽고 진하게 감싸주는 향이 또 재미있다.

 

이 술 역시 위에서 잠깐 언급한 가고시마 출신의 술이다. 이 간노꼬를 만드는 양조장 이름이 '사츠마주조(薩摩酒造)'인데, 이 사츠마라는 지명이 바로 현재의 가고시마이다. 나는 가고시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열심히 좋은 술을 만드는지 궁금하다. 일본이란 나라가 생각보다 진짜 길다랗고 큰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역마다 특색이 참 다양하고 은근히 이런 식도락 문화도 상당히 다채롭게 발달한 것 같다.

 

역시 보리소주인 만큼 고구나마 메밀, 그리고 쌀로 만든 것보다 단맛이 절제되고 보리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청량하지만 결국은 곡물의 고소함이 배어나오는 맛이 정말 예쁘게 표현되어 있었다. 위스키도 보리로 만드는데, 생각해 보니 Japanese Whisky (일본에서 만드는 위스키)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원래 이렇게 보리를 증류해서 소주를 잘 만들다 보니 거기에서 나온 노하우와 영향도 있겠구나 생각해 본다. 

 

확실히 일본 소주는 개성이 있다. 쌉싸름하다가 달아지기 전에 훅 휘발되면서 숙성된 술 특유의 깊고 부드러운 향과 알콜의 킥이 교묘하게 섞여든다. 유통량이 적어 가격이 비싼게 좀 아쉬운데,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맛을 보니 예전 처럼 일본 소주를 마시러 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보니 일본 소주의 인기가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월간조선에서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인용한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55 

 

일본 소주 열풍, 그 뒤엔 乙의 반격이 있었다 - 주간조선

대한민국 국민주 ‘소주’의 뿌리를 찾자면, 몽골제국의 전성기 때인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중국 원나라를 통해 중동지역의 증류법이 소개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weekly.chosun.com

 

간노꼬의 맛이 훌륭해서 이런 술을 누가 유통하나 봤더니, '젠니혼주류'라는 업체가 유통하고 있었다. 조금 살펴보니 2021년 매출액은 137억원, 2022년 매출액은 197억원으로 엄청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업력이 한 30년되고 한 길을 파온 업체 같은데 정말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업체의 매출 성장을 보았을 때, 확실히 대일관계도 좋아지고 있고, 일본 술 수요도 올라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막걸리와 전통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술의 가장 좋은 친구는 일본 전통주가 아닐까 한다. 최근 막걸리를 중심으로 가양주(집집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빚던 술) 전통을 반영한 다양하고 개성있는 전통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어쩌면 이 붐이 잘 발전되면 일본의 사케나 소주처럼 엄청난 다양성을 갖춤과 동시에 맛도 훌륭한 술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질감 또한 매우 훌륭했다. 보리 특유의 가벼움과 청량함이 잘 느껴져서 복어회와 함께 먹으면서 행복했고, 맑고 약간 기분좋은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게 진짜 '일본 술'의 느낌이 나서 신기했다. 우리나라 술은 아직 향과 질감 면에서 개선할 점이 많은 것 같은데, 어쩌면 일본 술에서 배워 올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간만에 장르를 바꾸어 보니 신선하고 좋았다. 더 즐겁고 열심히, 멀리 멀리 돌아 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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