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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ful Things/술 추천

술 추천: 125 Uno Due Cinque Primitivo del Salento 2017 (125 프리미티보 델 살렌토 2017)

by FarEastReader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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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인은 와인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시게 되었다. 이름에 써 있는 것처럼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프리미티보 품종을 써서 만든 술이다. 이 프리미티보 품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진판델 (Zinfandel)과 사실상 동일 품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가 미국 서부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좋아하는 내게 매우 친근하고 좋은 인상을 준 와인이다.
 
병의 뒷면을 보니 2017 469이라고 되어 있어 아마 한국에 많이 있고 Vivino에서도 가장 리뷰가 많은 2017년 빈티지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2017년은 여러 의미에서 인생이 뒤바뀐 해여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희망찬 여름과, 아무것도 모르고 불안과 고난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던 맹목적인 내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아프다.
 
페우디 살렌티니 (Feudi Salentini)라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으로, 소매가 3만원대 중반의 가성비 와인이다. 외국에서는 10불 전후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가격대의 와인에서 생각보다 좋은 와인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10불 이상의 술로 비교해 보자면 아직은 와인의 압승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마신 125 프리미티보 델 살렌토 2017 빈티지 와인은 한식 요리와 함께 즐겼는데, 고기와 궁합이 꽤 괜찮은 와인이었다. 생각보다 과실 맛이 풍부해서 상큼한 느낌을 준다. 자두와 레드 체리 맛이 강하고, 포도 자체의 뉘앙스도 꽤 분명하게 전달된다. 이전에 마셨던 이탈리아 와인들도 좀 풍부한 과실향이 특징이었는데 재미있었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의 말똥냄새 처럼, 이탈리아 와인 특유의 풍부한 과실향이 내 머릿 속에는 아주 기분 좋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한번도 이탈리아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한 번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거기서 와인과 함께 요리를 즐겨 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건포도 (raisin), 바닐라와 같은 약간 안주 같은 맛도 살짝 풍겨나온다. 이는 향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향이 생각보다 약간 건조한 느낌을 주는 향이 났는데, 오크향이 비교적 강하게 느껴졌고, 마른 꽃잎과 부드러운 바닐라, 그리고 마른 육류 같은 느낌의 향들이 차례 차례 펼쳐졌다. 이탈리아 와인이라서 나름 꽃향기 같은 것을 기대했었는데, 음식과 함께 마시느라 그런지 솔직히 향은 제대로 즐기기 힘들었다. 향을 맡으면서,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카톡에 느껴지는 키워드를 하나 하나 기록하여 스스로에게 전송하면서 마셨는데, 역시 이렇게 해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조용히 음미하는 것과 이렇게 즐기며 마시는 것과는 역시 집중도에서 차이가 크다.
 
질감은 꽤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탄닌이 적고, 단맛이 살짝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스무스하게 느껴졌다. 바디감은 중간 정도 였다. 산미도 강하지 않고 정말 가볍게 요리와 곁들이기에는 최상의 맛과 질감인 것 같았다. 스테이크 같은 무겁고 포만감 느껴지는 육류랑 곁들여도 정말 좋을 것 같고, 다소 가벼운 피자나 파스타랑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술 자체가 몇 년 잘 익어서 그런지 꽤 농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아무래도 서양 - 즉 유럽과 미국 -에 대해서는 역시 제한적으로 책과 미디어로만 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와인을 마시거나 하면 서양 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게 익숙한 사고방식과 풍습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훨씬 일찍 과학과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그들의 성취를 혀와 코, 그리고 알콜이 온 몸에 전달하는 취기로 느껴본다. 멀리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여러 번 이 블로그에도 적었지만, 정말이지 좋은 술은 삶에 의욕과 함께, 멀리 떠나고 싶은 탐험심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 같다.
 
한 서양 알콜 중독자의 묘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But then the wine came, one glass and then a second glass. And somewhere during that second drink, the switch was flipped. The wine gave me a melting feeling, a warm light sensation in my head, and I felt like safety itself had arrived in that glass, poured out from the bottle and allowed to spill out between us.”
― 
Caroline Knapp,  Drinking: A Love Story

"그리고는 그 와인이 왔다. 한잔, 그리고 두 번째 잔. 그리고 두 번째 잔을 마시는 중 어디에선가 스위치가 탁 켜졌다. 와인이 나에게 녹아드는 느낌을 주었고, 따뜻한 불빛의 센세이션을 내 머릿 속에 가져다 주었으며, 그리고 나는 안전함 그 자체가 병에서 따라져 나와서 우리 둘 사이에 흘러 나와 그 잔 속으로 도착한 것 처럼 느꼈다."

캐롤라인 냅, 드링킹 
(번역은 이 블로그 작성자가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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