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와인을 좀 마셔보고 있다. 2022년이 저무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 여전히 싸움은 계속되고, 인생은 쉽지 않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에 위안을 받으며 버티면서 최대한 즐겨보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할일을 하면 홀짝이는 술과 차의 맛이 깊게 느껴진다.
이번에 마신 와인은 이탈리아의 와인이다. 폰토디(Fontodi)라고 하는 양조장에서 이탈리아의 유명 양조용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을 가지고 빚어낸 술인데, 참고로 이름에 붙은 끼안티 클라시코 (Chianti Classico)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나(Toscana) 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와인 산지로서 이 '끼안티 클라시코'를 이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산지오베제(Sangioves) 품종을 80% 이상 사용해야 하며 허용된 레드 품종을 20%까지 블렌딩 하는 것까지만 허용된다고 한다.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서양의 매니아들이 발전시킨 와인 문화는 정말 너무나 복잡하다고 느껴진다. 때로는 책을 보면서 철저히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공부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건 좀 방대한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조금씩 지식을 축적해 나가고, 또 나누는 것도 무척 의미가 있고 즐거운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와인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는 사람은 싫어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와인을 마신다는 것도 참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탈리아 와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과실주에 기대하는 산미와 상큼함이 정말 잘 반영된 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와인이야 뭐든 좋지만, 이탈리아의 맛있는 요리와 진짜 잘 매치되는 이탈리아 와인은, 특히 요리와 함께 마실 때 훨씬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마신 폰토디도 먼저 상큼한 산미가 두드러진다. 단순한 산미가 아니라, 포도나 베리류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의 상큼함과 달콤함이 있다. 그러나 물론 성숙한 와인 답게, 부드러운 탄닌이 단맛을 억제해 준다. 살짝 다른 와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육류의 감칠맛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정말 '맛이 있는' 혹은 '맛좋은' 와인이 아닐까 한다. 이런 형용사가 이처럼 상큼한 산미와 개성이 있는 와인에 과연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2018년 빈티지를 지금 마셨기 때문에, 나름 적기에 꺼내 마신거 아닌가 한다. 상당히 맛이 부드럽고 좋아서 마치 오래 숙성된 비싼 와인을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사실 와인을 좀 미리 따서 상온에 약간 둔 다음에 마셨기 때문에, 혹시 브리딩 효과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시 브리딩이 원인은 아닌 것 같다. 브리딩에 관해서는 나는 아래 글과 의견을 같이하는 편이다.
이 폰토디 끼안티 클라시코 2018년 빈티지는 향이 아주 좋았다. 첫 향으로는 역시 베리향이다. 상큼하고 섬세한 와인이라는 인상을 주는 향이 지나가고 나면 향긋한 오크통 향이 느껴진다. 폰토디 와이너리의 설명에 따르면 18개월간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을 한다고 하는데,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향이 짙고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 와인도 온도나 환경에 따라 향이 잘 퍼지는 때와, 잘 안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 같은데 겨울에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향이 아주 깊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끝향에서 약간 바닐라와 같은 달콤한 향이 느껴진 점이다. 상큼한 베리향 -> 오크통의 기분좋은 나무 향 -> 살짝 매캐한 향신료와 알콜 느낌을 지나 바닐라로 이어지는 향의 플로우가 좋았다. 맛보다 향의 변화가 인상적인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감면에서는 솔직히 약간 라이트한 느낌을 받았다. 알콜이 14.5도로 그렇게 낮지는 않은데, 바디감이 강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술술 잘 넘어가는 맑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비단결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적당히 리프레싱하고, 끈적이지 않았다. 붉은 빛이 강한 루비색 색채와 어울리는 질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부드럽고 맑은 느낌의 액체에서 이렇게 풍부한 아로마와 맛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내게도 와인이란 참 벽이 높은 주종인 것 같다. 연장자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더 서양을 잘 아는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내 선택보다 그 사람의 선택을 믿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막걸리가 내게는 좀 더 편하고 즐겁지만... 역시 와인을 마실 때 내가 이 술을 진짜 좋아하는 구나, 생각하게 된다.
내년에는 좀 더 와인을 더 잘 알아가는 한해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좀 더 넓은 세계로 발을 내딛어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분명 더욱 즐거운 세상이 있으리라 믿는다. 움츠려들지 말고, 더욱 당당히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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