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여름이다. 7월이고, 장마도 한 풀 꺾인 느낌이다.
이럴 땐 또 캘리포니아 와인을 약간 차갑게 해서 마시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늘 맑고 쾌청한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기후가 그리워지면서, 정말 캐주얼하게 한 잔 마시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전에 포스팅한 나파 밸리의 좋은 와인들을 다시 링크한다.
2022.01.17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텍스트북 (Textbook) 와인
2022.04.09 - [Useful Things/술 추천] - 술 추천: 바소 (Vaso) 와인
이번에는 로스트 포엣 (Lost Poet)이다. 이 와인은 같은 캘리포니아 와인이지만, 위에서 소개한 나파 밸리 (Napan, CA)에서는 차로 약 70 마일 (112.65 km) 떨어진 아캄포 (Acampo) 지방의 와인이다.
이 로스트 포엣을 만드는 와이너리는 Winc라는 곳인데, 여기 역시 친환경, 저황 (low sulfur)와인을 만드는 곳이라고 한다. 와인이 좀 더 마시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창립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와인도 구대륙 (특히 프랑스) 와인에 비해 훨씬 알기 쉽고, 직선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아마 이런 것이 미국 와인의 장점인 것 같다. 미국 문화 그 자체의 장점이기도 하고...
먼저 맛이다. 이 로스트 포엣은 상당히 드라이하다는 첫인상이었다. 차갑게 해서 처음 마셨을 때는, "어, 쓴데?" 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곧 퍼지는 베리들의 풍미와 새콤함이 그 이 인상을 지우고, 상당히 향기로운 와인이라는 느낌을 준다. 잘 구운 소고기나 닭고기와 먹으면 끝내주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끝맛은 살짝 씁쓸하면서도 매콤한 후추향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더욱 고기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상온에 두면서 살짝 전반적으로 와인이 풀리는 걸 기다리면서 홀짝홀짝 sipping을 하니, 마치 캘리포니아에 온 느낌이 들었다. 점점 베리의 새콤달콤한 맛이 강해지고, 여러 과일의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부페에 가서 집어온 키위와 파인애플을 어쩌다 한번에 먹었던 때의 그런 맛이 느껴졌다. 아마 여러 포도 품종을 섞은 blend wine (블렌드 와인)이기에 나타나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탄닌의 쓴 맛이 여전히 죽은 건 아니다. 벨벳같은 부드러움과 함께 여전히 탄닌이 아주 부드럽게 술 전체에서 분포되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상당히 훌륭한 느낌이다. 베리류의 새콤함이 치고 올라간 속에서 탄닌이 무게를 잡아주고, 그리고 약간의 시나몬이나 바닐라 같은 이색적인 맛이 개성을 부여한다. 아, 와인은 정말 미묘한 술이다. 이런 와인을 느낄 때마다 와인과 막걸리를 동시에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어떤 인간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커피도 믹스커피부터 고급 원두를 로스팅하고 갈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까지 최대한 폭넓게 각각의 개성에 맞추어 즐기자는 주의인데, 이런 사람들이 아마 막걸리와 와인을 둘 다 좋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 본다.
향은 압도적으로 베리향이 강하다. 살짝 후추와 토바코의 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역시 베리류다. 이 향과 맛의 차이가 참 매력적이다. 향만으로는 그냥 베리류의 맛이 지배적인 와인일 것 같은데, 와인 맛 자체는 아주 또 성숙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리 새콤달콤 한 것만도 아닌... 와인은 정말 성(性)적인 뉘앙스를 갖는 술인 것 같다. 맥주나 소주, 막걸리와 달리 말이다. 이와 비견될 수 있는 건 일본의 사케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특히 향기가 이렇게 깊고 미묘하다는 점에서, 더욱 관능적인 느낌이 난다.
질감 역시 훌륭했다. 일단 술 자체가 한 미디엄 바디 (medium body)정도 되어 바디감이 적절히 있는 편이다. 그러나 상당히 부드럽다. plush (플러시)가 충분히 매혹적이고, 탄닌마저 이 부드러움과 조화되어 부드러운 쓴맛, 부드러운 드라이함을 부여한다. 여전히 산미가 강해서, 산미 특유의 톡 쏘는 그런 느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강렬한 태양 아래서는 오히려 맛있게 느껴진다. 청바지와 남방을 입고도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느낌의 트래킹 코스가 있는 산 위애 올라가서 이 와인 하나 들고 강렬한 태양 아래서 바다를 내려다 보며 이 와인을 한 병 마시고 싶다. 진짜 태평양이 그리워진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강원도에라도 가야 하나? 하는 그런 느낌이다.
술 병에 써진 시를 본다.
Dont' be
Scared
to change
the prince's
name
in your
sotry.
두려워
말아요
당신 이야기의
왕자의
이름을
바꾸는 걸.
한국어와 영어는 어순이 정말 정반대이다. 하지만 메시지는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하고, 또 수많은 도전을 한다. 그게 인생이다. 우리 인생에서 절대 못바꿀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 그리고 바꾸면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서 새로이 모든 걸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뭐 저질러 보고 나면, 그 다음에 또 여러 일들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뭐 그건 그대로 흘러간다.
그러니 너무 답답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언가에 얽매일 필요도 없이.
이 술이라도 한잔 하고, 새롭게 여러 도전을 시작해 보면 어떨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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