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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ful Things/삶의 개선

특이한 소설 하나 추천: 재즈 느와르 인 도쿄

by FarEastReader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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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이 소설 하나를 추천해 줬다. 이전 소개한 '깨지기쉬운' 처럼 한국 사람이 일본 가서 겪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나왔다며 나에게 책 한권을 준 것이다.

명작 '깨지기쉬운'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고...
2021.02.01 - [수렵채집일기/무슨 책이 도움이 되는가] - 스토리의 강력한 분출: 명작 한국소설

스토리의 강력한 분출: 명작 한국소설

우리나라는 영화가 강하다. 어제 밤에도 EBS에서 틀어준 한국 영화 '의형제'를 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상언어로 풀어내는 스토리의 솜씨에 감탄했다. 그런데 영화에는 이렇게 엄청난 작품

seoulindanger.tistory.com


이 책은 깨지기쉬운과는 달리 스토리 전개 위주의 스릴러/추리(?)소설이다.

일본 동경에 과거 윤동주 형님이 유학했던 릿쿄대학이라는 곳이 있다. 이 릿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한일관계사 교수 (박정민 교수)가 겪게 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다만 아주 특이하게도, 이 교수님의 취미는 성인 비디오 모으는 것인데, 이 취미가 간접적인 계기가 되어 도쿄의 한 유사 성매매 업소의 전단지에 끌리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한국-일본을 아우르는 검은 세계에 살짝 발을 들여 놓으며 팔자에 없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인공 박교수는, 여러 여성들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기고 하고, 또 재즈라고 하는 음악에 새로이 빠져들게 되면서 숨겨왔던 자아와 다시 마주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일본인 교수들이나, 강의를 통해, 그리고 한국의 동료 교수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정치 체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일본 우익들이 주로 주장하는 근대~현대의 한일관계사, 주로 식민지배 연구,에 대해서 아주 급진적인 사상을 소개하기도 한다.

주인공 박교수는 전형적인 586 세대의 감성을 갖춘 아재로 보이나, 이 사람이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근현대사에 대한 관점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다소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다소 우익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건 586세대 치고는 매우 특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치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자체 보다, 이런 황당하고도 독특한 개성의 분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재즈 느와르 인 도쿄 표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음악이 엄청 듣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 안에 등장하는 재즈가 엄청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며 재즈를 들으면 유난히 더 좋게 느껴진다. 이건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같은 사람들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기분이기도 한데, 이 소설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즐거웠다. 덕분에 유튜브를 통해 여러 좋은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본인의 욕망 - 특히 성적 욕망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하.... 이 소설은 참 나쁘게 말하면 586 아재 형님들의 말도 안되는 여성관과, 또 성적 판타지가 마구잡이로 투영된 그런 부분이 많다. 거의 뭐 조국 교수 수준의 밑도 끝도 없는 나르시시즘과 586 엘리트 특유의 '저 여자도 나를 좋아할거야'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 모든 여자가 자기를 유혹해 줬으면 좋겠는 그런 유아적인 기대... 이런 것이 마구 나온다.

이 세대 형님들 특유의 지속되는 성욕과, 그걸 전혀 만족 시켜주지 않는 현실, 그들의 나약하고 술과 피로에 지친 육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 구석에는 조국 교수가 태권도 단증자랑하며 슬림한 근육 어쩌구 하거나, 뜬금없이 턱걸이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자기도 아직 육체적으로나 남성적으로 매력이 있다고 믿는 뭔가 모순되는 열등감 묻어난 근자감 이런 것들이 이 소설에서도 정말 날 것 그대로 마구 문자화 되어 있다.

뭐 이런 느낌...
뭐 이런 느낌....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솔직하게 쓰여진 소설이라서 그런가, 오히려 그 지점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었지?
내가 바라는 건 뭐였지?
오히려 이런 걸 잊고 사는 것이 잘못된 거 아닌가? 이런.... 여러 생각이 든다.

분명히 모든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있고, 특히 성적인 면으로도 판타지가 있을 터인데, 586 세대들과 비교해서 그 밑으로 가면 갈수록 뭔가 점점 더 옅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솔직해지지도 않는 느낌이다. 뭐 솔직하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586 세대들의 착각이나 민폐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뭔가 생명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일본에 대해 아주 색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해 준다는 점도 재미있다. 아마도 저자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려는 일본과 한국간의 근현대사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반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꼭 진실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주국의 정치 실험에 대한 소개 - 만주국은 어떤 의미에서 The United States(?), Peoples(?) of Asia를 만들려 했다 - 나, 이를 승계한 것이 박정희의 대한민국이라는 견해라던지, 아니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실용성이나 식민지 유지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한 관점에서의 통치를 이야기 한다던지 하는 것은 조금 더 성숙하게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한 번 들어는 볼 가치는 있는 이야기들이다. 너무 몰입되지 말고, 아 이렇게 볼수도 있구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특이한 책이다. 잘 쓴 소설은 아니지만, 분명 재미가 있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 안의 뭔가 움츠려 들어있는 것을 자극해 오는 소설이다.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아니면 소싯적 자기보다 힘이 세고 자유로웠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불량배들에 대한 잊혀진 동경이나 열등감이든, 일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든, 차마 숨겨 왔던 성적인 욕망이든,
뭔가 하여튼 간질간질 마음을 건드리고, 생활과 정신에 새로운 환기를 불어넣어 주는 소설이다.

곧 절판이 될 수도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한 권 가볍게 사서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예술 애호의 측면에서도 이런 기이한 작품을 쓴 사람은 응원해 주는게 도리에 맞다.

[파람북]재즈 느와르 인 도쿄, 파람북, 이종학

[파람북]재즈 느와르 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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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이 재즈 느와르 인 도쿄를 쓴 이종학 작가님과 아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2명 떠오른다. 한명은 이규형 감독이라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김지룡 교수라는 사람들로서 둘다 일본 유학이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쯤 일본 문화에 대한 소개를 했던 2000년대 초반의 인물들이다. 이 둘 중 특히 김지룡씨와 이 저자가 정말 세대적으로나, 아니면 주는 느낌으로나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예전 2001년의 김지룡씨에 대한 기사를 하나 첨부한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9682

〈인생 망가져도 고!〉펴낸 문화 평론가 김지룡씨 - 시사저널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더 놀자" 솔직하고 글 잘 쓰니까, 괜찮은 사람 아닌가요?"(30대 주부) "자기 생각은 있지만, 그 사람 딴따라잖아요?"(30대 남성) "재미있잖아요. 발랄하...

www.sisajournal.com



뭔가 삶이 구겨져버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답답한 틀 안에서 희생하고, 순종하고,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우리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고, 군대의 영향일 수도 있고, 뿌리깊은 유교의 영향일 수도 있다.

난 이 소설을 내게 전달해 준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거 읽고 나서 어떻게 뭐 변한게 있냐고. 분명히 당신과 같은 사람이면 변하는게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지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있긴 있는데, 너무 황당한 계획이 생각나서 그냥 관두고 그냥 안변하려고. '

이 사람에게도 그 황당한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하루빨리 찾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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