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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일기/연애와 로맨스

드라이브 마이 카 -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랑

by FarEastReader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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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 친구의 추천으로 몇개월을 기다려 보게 된 영화다.

구글 플레이에 영화가 있기에, 그걸로 봤다. 

 

일본 영화가 별로 좋은 게 없는데, 이 영화는 거의 예외적일만큼 훌륭했다. 아마 감독이 한국 영화계 또는 한국 영화에 깊은 애착이 있는 것 같은데, 한국 영화와 좋은 교류, 좋은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진짜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도 않는 한국인들을 등장시킨 것이나, 아니면 여러 가지로 한국 관련된 장치를 넣은 것도 그 보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상실감을 또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담담히 생활과 일을 해 내가며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타인일 때에는 당연히 서로에 대해 미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더라도, 서로 완전히 통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연히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오해를 극복하고, 조금씩 조금씩 신뢰를 쌓고, 그러면서 서로 또 상처 주고, 숨기고, 거짓말하고, 이해하고,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가 높아져야만 극적으로 맞닿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당연히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 끼리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방법은 속깊은 대화, 섹스(사랑), 또는 좋은 예술 작품을 공유하는 것 - 이런 일련의 인간적인 행동들에 깊이, 진지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해 예의와 존중을 갖추는 것, 필요 이상으로 타인에 대해 간섭하거나 타인을 규정하지 않으로겨 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일본적인 정서나 인간관계는 사실 이 부분을 되게 강조하는 면이 있다.

혹시 일본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우에는 이 부분을 잘 생각해서 관계에 임하는 게 좋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가후쿠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자세를 보면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지점에서 일본식의 인간관계의 리스크를 말하고 있다. 결국 가후쿠가 실패했던 것, 또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운전수 미사키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이 너무나 모범적으로 일본적인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이유가 되었고, 또 그 이후에 상실감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후쿠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일본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미사키는 전통적이고 장인정신 가득한 일본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오히려 가후쿠는 40대 후반의 중년 남자고, 미사키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 조합은 처음부터 흥미로운 균열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둘은 북해도 여행을 통해 아름다운 균열을 만들고,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거꾸로 이들을 이어 준 것은 일본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한국어, 일본어, 영어, 수화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자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윤수'라는 한국 사람의 존재다. 이 윤수.... 라는 캐릭터는 나는 좀 불편했다. 이 사람은 진짜 일본에 있을 법한 한국인이지만, 또 너무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진 한국인이었다. 일본식의 인간관계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해결책의 힌트를 제공하는 존재로서 등장하게 된 이 윤수와 그의 처는 매우 필요한 역할이었지만, 나에게는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공 남자 가후쿠와 또다른 주요 역할인 다카쓰키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 둘을 이어 준 것은 가후쿠의 사별한 전처 오토이다. 그러나 가후쿠, 오토, 그리고 다카쓰키는 자극적이고 기묘한 관계, 텅 비어서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사랑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이들 일본인들의 관계가 이렇게 묘사 된 것이 참 흥미로웠다. 원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딱 이 일본인들의 관계만 나온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건 사실 일본인이 어쩌고 하는 문제가 아니고, 원래 문제적인 인간관계로서 소설 내에 다루어진 인간관계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앞의 윤수의 존재로 인해 '일본적'인 성격이 더욱 부각된 느낌이다.

 

중요한 건, 이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난 이후 나는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가 되었든 우리는 관계에서 실패를 겪는다.

특히 사랑과 같은 복잡한 관계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그리고 성숙한 사람끼리의 관계일수록 그 복잡성과 '배려'와 '타협'을 가장한 가식으로 인해 실패의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어쩌면 사랑과 연애에서는 좀 더 착하고 솔직하게 임하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은 것 같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영화 마지막 미사키가 선택한 새로운 장소는, 어쩌면 그런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곳에서 탈출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계속 상처 받고, 살아갈 각오로,

계속 사랑하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솔직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 말고, 먼저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잡아 주고,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사랑을 추구하는 게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이 추하든, 아름답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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