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은 행정구역은 충북이지만 사실 대전보다도 밑에 있고 오히려 무주에 가깝다. 충청북도 충청남도는 사실 충청서도 충청동도로 부르는 것이 더 현실에 부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여튼 이번에 영동에 방문할 일이 있어 영동 IC 근처의 작은 마을의 한 슈퍼에서 이 영동심천 생 막걸리를 샀다.
시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막걸리인줄 알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대를 이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곳에서 만든 전통있는 막걸리였다.
먼저 맛을 스케치 해 보자면, 달지 읺고 살짝 알콜 음료 고유의 터프함이 기분 좋게 지나가는 게 매우 개성적이었다. 꽤 씩씩한 맛의 막걸리다. 혀에 닿을 때의 즉각적인 맛이야 당연히 달달한 막걸리가 당장은 맛있지만, 맛을 조금만 깊게 느껴보려고 하면 바로 단맛은 방해가 된다. 나는 막걸리가 조금 더 진지한 술로 인정받으려면 이 단맛의 딜레마를 어떤식으로든 극복해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영동심천 생 막걸리는 단맛을 거의 최소한으로 누르면서도 고소한 곡물 맛과 술 자체의 맛으로 아주 매력적인 개성있는 맛을 만들어냈다.
포도주 - 즉 와인을 생각해보자. 그저 달콤한 포도주라고 해서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달콤한 술을 만들고자 하면 쌀보다 포도가 훨씬 쉬울텐데 왜 와인은 그 길을 걷지 않았을까?
막걸리 또한 영어로 하면 라이스 와인 (rice wine)이라고 한다. 막걸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이 영동심천 막걸리를 주면서 Korean rice wine이라고 소개하고 맛을 보라고 하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며 맛을 포도주 와인과 같은 기준과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마 서울 장수막걸리를 주면서 맛을 보라고 하면, 아주 새롭다는 얼굴을 하면서 다른 기준으로 맛을 평가할 것 같다. 아마 주스나 칵테일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다.
영동심천 생 막걸리는 그런 점에서 좀 더 술의 본질에 가까운 맛을 가졌고 그러면서도 시원하고 청량한 막걸리 특유의 맛 (탄산과 산미)을 잘 가지고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위에서 단맛이 거의 없는 것처럼 썼는데 아예 없는 쓴 막걸리는 아니다. 특히 개봉하고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술이 적절히 풀리고 공기와 함께 추가 발효가 되면서 단맛이 조금 더 부드럽게 퍼져 나간다. 어쩌면 이런 점도 포도주 와인과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 단맛이 조금 더 가미된 것이 막걸리 팬 입장으로는 이 편이 더 좋았다.
솔직히 향은 많이 아쉬웠다. 너무 금방 휘발되어 버렸고,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숙성 기간이 짧은 것이 역시 향에는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누룩향 이외에는 특별히 즐길 향이 없다는 것은 참 아쉽다.
바디감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 막걸리 또한 여름에 즐기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청량한 감촉과 이를 빈틈 없이 채워주는 곡물로 만든 탁주 특유의 포만감있는 음료의 감촉이 모순적이지만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 영동심천 쌀 막걸리는 알콜 도수가 7%로 일반 막걸리 (6%) 대비 조금 높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이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한 막걸리다. 이런 막걸리가 유통망을 타지 못하고, 영세한 양조장에서 만들어져서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검색엔진에서 조금만 찾아 보아도 포스팅은 많이 없지만 다들 만족스러웠다는 아저씨(^^;)들의 포스팅을 꽤나 찾을 수 있다.
<영동심천 생막걸리 관련 예시 포스팅 - 아재들의 포스 + 영동심천 막걸리 관련 뜻밖의 출연자>
https://blog.naver.com/zzangddoly/221525368337
술 찾아 다니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이렇게 허례 없고 허식 없는 막걸리는 정말 좋은 취미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영동심천 생 쌀막걸리는 쌀, 밀 모두 외국산 재료를 쓰고 있어서 순수한 우리 것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양조장의 노하우는 누가 뭐래도 영동 지역의 기술이니 그대로 인정하고 가련다.
이 지역에 들릴 일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찾아 마셔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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