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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일기/운명을 개척하기 - 지혜와 운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 - 노예근성을 버려라

by FarEastReader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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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사람은 자유에서부터 도피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해 하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엔 누군가에게 자발적 복종을 선택한다는 주장이다.

위 내용은 아주 중요하니, 간단한 이해를 위해서 나무위키의 관련 항목을 인용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는 그가 젊은 시절 독일에서 직접 체험한 파시즘을 인간 심리를 통해 분석한 책으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파시즘이 태어나고 지지를 얻는지, 이상적인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성원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고찰하는 내용.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독일인들이 혁명으로 세운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을 붕괴시키고 나치를 지지함으로써 애써 얻은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복종'을 선택했던 불가사의를 분석했다. 그는 이 책에서 개인이 자유라는 짐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존재라 분석했다. 고독을 피해 종교를 선택하거나, 독재자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정신적인 안정을 찾거나, 자본주의의 기계에서 톱니바퀴가 되어버린 개인은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는 것이다.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정치체제는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마조히즘)'과 함께 힘이 없는 자들에 대한 '강압적 지배(사디즘)'의 충동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출처: https://namu.wiki/w/%EC%97%90%EB%A6%AC%ED%9E%88%20%ED%94%84%EB%A1%AC

 

Servility.. 노예근성.. 정말 우리를 좀먹는 것중에 피해망상과 함께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피해망상과 마찬가지로, 이 노예근성 또한 '좋은 것'을 가장하며 우리를 잠식한다.

열심히 하는 것, 희생, 효율, 군소리 없이 남자다움.... 이 모든 것이 노예근성이 즐겨 쓰는 가면이자 거짓말이다.

 

주변을 둘러 보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예의 삶을 선택하고, 착취당하면서

심지어 이 사실에 긍지마저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예근성이 존재하고 대다수는 이에 따르기에 사람들은 큰 일을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거대한 과업을,

누군가의 지도 아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학대하고 희생하면서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당신이 너무나도 불행하고 괴롭다면?

그래도 당신은 노예의 삶을 당연시하고 받아들여야만 할까?

 

나는 과감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쩌면, 당신이 노예가 아니라 리더로 태어났다는 뜻일지도 모르고, 당신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늘에서 소명을 내려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가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은 해 봐야 한다.

 

내가 노예로서의 현실을 일단 받아 들인다고 했을 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전체를 위해, 또 나 개인을 위해 옳은 일이고 좋은 일인가?

 

나는 모든 의미있는 철학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 희생이 값어치가 있고 옳은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세상이 하는 말을 다 옳다고 받아들이기 전에.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코기토 에르고 숨(라틴어: Cogito, ergo sum, 해석: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가 가진 깊은 뜻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그 상황과 자신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따져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시도할 수 있는 주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자는 뜻이다.

이걸 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들의 팔다리, 아니 그냥 남들이 쓰고 마는 도구, 남들이 먹고 소비하는 음식에 불과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측은한 일이다.

그리고 알지만 그걸 정당화 하려고 하고 무기력에 빠져드는 것이 가장 한심한 일이다.

노예근성은 이에 더해서 노예 생활이 오히려 옳고, 바르다고 믿으며 남들까지 노예로 만들려고 하고, 맹목적으로 주입된 사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삶을 점검하자.

자신은 노예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이대로 좋은지를 꼭,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저 노예의 삶에 만족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허비해서는 안된다.

 

정직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요구해라.

당신이 노예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세상은 당신을 노예로 취급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을 아껴쓰고, 주체적으로 살아라.

설령 노예의 삶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주체성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

잊지 마라, 모든 순간이 배움의 순간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ublicDomainPicture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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