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샤머니즘의 영역이 있다.
이번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런 죽음... 이런 것들을 볼 때 아무도 예측을 못했지만, 누군가는 박원순 시장의 사주나 기운 같은 것으로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충분히 가까이에 있었다면 말이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주나 무당이나 하는 것을 맹신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시 말하건대, 이런 것들을 아무도 제대로 예측 못했다는 게 이런 샤머니즘의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살면서, 때론 현재 우리가 아는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의식이나 영혼이 기능하는 방식을 아직 과학으로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의식이나 영혼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가기에 샤머니즘이 끼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세상이 계속 복잡해지면서, 단순하게만 봐서는 미래를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샤머니즘적인 방식이 은근히 도움 될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자기가 잘 알고 깊이 생각해 본 분야에서 나온 어떤 감 - 그걸 가지고 한 번 주변과 진지하게 이야기 해 보는 것이 앞으로는 엄청 중요해 질 것 같다.
여기서 토론의 질이 핵심이다. 어차피 감에 의한 상상으로 의견을 나워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독재친화적 문화에서 권위자의 촉이 그냥 사실이 되어 버려서 경청 말고는 다른 의견이 안나오는 사회라면 오히려 그 엉뚱한 신탁에 의해 망할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면... 즉, 다양한 사람들의 상상력과 직감에 의한 새로운 추측이 잘 교환되고,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아마 앞으로의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밀레니얼들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항상 젊은 세대들은 늘 그렇지만, 더욱 열려 있다. 아직은 권위보다는 자유로운 상상에 귀를 기울이는 데 익숙하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에 더욱 익숙하다. 게다가 정보를 더 잘 찾고, 그 홍수 속에서 자기가 봐야 할 것을 찾아 내는 것도 잘 하는 편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샤머니즘의 영역을 굳이 들먹인 것은,
이들이 경험이 없다고, 또 어리다고 무시하기 전에, 무당의 말을 재미삼아 들어보는 것처럼, 호기심에 사주 결과를 뽑아 보는 것처럼 한 번 샤머니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남의 말을 좀 들어보라는 취지다.
일단 그렇게 편견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영혼과 의식은 놀랍게 확장된다.
잠재의식 속에서 자고 있던 아이디어나 생각이 떠오를 수 있고, 정말 다가올 미래를 느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은 더더욱
남을 존중하고, 유연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미래는 단순히 똑똑한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하고, 또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 더 잘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건 착한 놈이 복을 받는 샤머니즘의 원리와도 정확히 부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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