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었다. 큰 기대를 결고 지난 한달간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는 썩 밝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한달 간,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 고급 한우집에 가서 전통주 하나를 마셨는데, 그게 바로 이 고흥유자주 12 였다.
독한 술을 마시는 건 좀 싫고, 그렇다고 아무 술이나 마시기는 싫었기에 조금 독특한 술을 고른다는 것이 바로 이 고흥유자주 12였는데, 생각보다 술이 좋았다.
먼저 맛이다. 이 술은 살균약주로서, 병입 후 후발효에 의한 맛의 변화가 없는 술이므로 조건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양조장에서 의도한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예상대로 유자의 달콤한 맛과 상큼함이 잘 뿜어져 나오는 술이었다. 한편으로 약주 특유의 달콤함이 매우 강해서, 조금 끈적거린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술은 외국인과 함께 마셨는데, 그 사람이 이 술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인데, 이 술을 거의 천천히 마신 걸로 봐서, 아마 이 단맛이 좀 너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역시 한국인인 내가 즐기기에는 그저 달달하니 좋은 술이었다. 유자차도 좋아하고, 이런 시트러스 계열의 귤맛 나는 술도 좋아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녕 우리 술이라는 건 이렇게 달짝지근~ 한 것을 억지로 무슨 명주인것처럼 추켜올려 세우고 이쁘장한 그림체의 라벨과 예쁜 병에만 담아 팔면 그만인건가? 하는 아쉬움이 든 것 또한 사실이다. 약주 자체가 너무 달다는 생각을 역시 지울 수가 없다. 쌀의 풍미와 곡식의 고소함도 나름 잘 드러나고 있고, 유자도 은근히 예쁜 맛을 잘 나타내고 있지만 이 점은 정말 아쉽다. 나는 차라리 그래서 막걸리나 소주를 즐길지언정, 약주는 사실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의 사케에 비해서도 솔직히 약주의 장점을 잘 모르겠다. 유자를 가지고 만드는 술은 일본에도 여럿이 있는데, 일본의 유자가 들어간 리큐르 들과 비교해도 고흥유자주가 어떤 경쟁력을 가지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 술을 잘 즐기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꽤 편하고 재미있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예전 과일소주를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데이트 같은 자리에서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가볍게 입가심을 해 가며 음료수처럼 즐기기에도 딱 좋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향 또한 좋다. 유자 향이 그윽하게 퍼지고 나름 약주 특유의 누룩향도 즐길 수 있다. 쌀의 구수함도 살짝 끝 부분에 감도는 것이 전형적인 약주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이상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단순하고 깨끗한 향이다. 향을 즐기는 술이라기 보다는 맛을 즐기는 술이다.
질감은 다소 끈적하고, 바디감도 있는 편이다. 녹진한 액체가 꽤 진득하게 흐른다. 달콤함을 질감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부드럽고 예쁜 술이다. 은근히 술이나 해산물 요리와도 잘 녹아 들고, 잔당감이 적게 남는 것은 큰 장점이다.
우리 술은 역시 약주보다는 막걸리나 소주가 좋다는 것을 느낀 한 잔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마셨다. 좀 더 다양한 일본 술을 참고하는 것이 우리 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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