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도 막걸리와 유사한 술이 있다. 바로 도부로쿠라고 하는 술이다. 그런데 일본은 니혼슈 (사케)와 소주 같은 맑은 술이 대세를 이루고, 사케 중에서 니고리자케(濁り酒)라고 거친 망으로 거른 탁한 술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역시 사케 하면 맑은 술이라고 하겠다.
도부로쿠는 참 특이한 술이다. 먼저 재료에서 쌀과 쌀누룩, 그리고 물로만 만드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술을 빚고 나서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마시는 것이다. 막걸리와 비교하자면 누룩의 종류가 약간 차이가 있고 (우리나라의 막걸리는 밀누룩이 대세다), 그리고 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내기와도 비슷하다.
이번에 마신 도부로쿠는 나가노현에 있는 '센죠(仙醸)'라고 하는 양조장에서 나온 도부로쿠다. 도쿄 도내의 고급 슈퍼마켓 메이지야에서 1500엔을 주고 구입했다.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달리 도부로쿠는 1899년 가양주 (집에서 담그는 술) 금지 이래 거의 생산되지 않은 술로, 지금은 일부 도부로쿠 특구로 지정된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술이다.
도부로쿠는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이나 막걸리를 연구하고 애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마셔봐야 하는 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술은 전혀 거르지 않고 만든 술이기 때문에, 입자가 상당히 거칠다. 맛을 보면 딱 그 '갈아만든 배'를 마시는 것과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 부들부들하고 부드러운 입자가 큰 지게미가 매우 독특하다.
맛은 달콤하고, 아주 부드러운 산미가 곱게 퍼진다. 막걸리와 상당히 유사하나, 좀 다르다. 아마 그냥 전내기에 물을 타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거르지 않고 그래도 마신다는 점에서 이런 맛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 프리미엄 막걸리에서 느껴지는 과실향은 적은 반면, 아주 부드럽고 시원한 맛이 난다. 진짜 곱게 발효된 것이 딱 정말 일본 사케를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굳이 따지자면 메론계열인데, 그보다는 살짝 더 배 느낌이 난다. 70%를 남겨 도정한 쌀로 만든 것도 (우리는 이보다는 덜 도정한 쌀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약간 다른데, 그래서 부드러움이 한층 더 높은 것 같다. 이 술은 2012년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역사에 비해서는 역시 일본 술의 양조 기술이 있어서인지, 확실히 퀄리티가 높다.
향 또한 독특하다. 막걸리의 달큰함을 닮았는데 누룩취가 거의 없다. 음료수를 방불케 할 만큼 깔끔하고 산뜻한 성격의 달콤한 향이 퍼지고, 그 뒤에는 쌀의 고소함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살짝 레몬 같은 산미 있는 향이 맨 뒤에 남는 것이 재미있다. 향이 굉장히 좋은 술이라고 느꼈다.
질감은 중간 정도의 바디감을 가졌고, 지게미가 아주 '갈아만든 배' 건더기 수준으로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탄산도 중간 정도로 있어서 아주 청량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맛과 향, 그리고 질감에서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술이 많아 보이는데, 정말이지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도부로쿠를 꼭 마셔 볼 것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1866년부터 술을 만든 곳에서 나온 작품인 만큼 상당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쌀로 만든 막걸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정답지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술이었다.
일본의 탁주인 도부로쿠도 앞으로 종종 여러 종류를 마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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