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술은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주고 받는 친구...는 사실상 거의 없기에 정말 고마웠고 뜻깊었다.
처음에 이 술을 받았을 때, 문득 대학시절 유럽여행을 다녀온 한 친구가 사 온 티셔츠가 떠올랐다. 회색의 그 티셔츠를 나는 구멍이 날 때까지 입었다. 체코인가 어디에선가 사 온 티셔츠라고 했는데, 정말 기뻤었다. 생각보다 선물이란게 참 좋은 것이구나, 새삼 느낀다.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도를 가지고 주면 완전 부담스러운게 선물이겠지만, 이미 신뢰와 친밀함을 갖춘 사람들 사이에서는 참 선물이란 것이 큰 힘을 가지는구나 생각해 본다.
먼저 맛이다. 풍부한 쌀과 밀이 섞여 나는 달콤함과 고소함이 이 술의 가장 특징적인 맛이다. 첫 잔부터 매우 깊은 풍미를 가진 고급스러운 달콤함과 고소함이 아주 진하게 풍겨 나왔다. 게다가 단 맛은 뒤로 갈 수록 점차 프리미엄 막걸리 특유의 메론 맛으로 변화해 갔다. 산미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텁텁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달고 고소하지만 나름 개운하고 잔당감이 남지 않는 것이 매력이었다. 아주 잘 만든 술이었다.
조금 살펴보니 이 발효공방 은하수 8을 만드는 양조장인 경북 영양군의 농업회사법인 (주)발효공방 1991은 교촌 에프엔비의 자회사였다. 교촌 치킨으로 유명한 그 상장사 말이다. 이 교촌 에프엔비 역시 경북 구미시의 '교촌통닭'을 그 시작으로 하여 지금까지 성장한 회사인데, 이 '교촌통닭'이 1991년에 시작되어 교촌에서도 '1991'이라는 숫자를 브랜드나 사명과 함께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발효공방에 '1991'이라는 숫자가 붙은 것도 교촌 계열사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인 2023년 9월 5일, 농민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0904500522
살펴 보니 2022년 12월에 폐업에 까지 이르렀던 경북 영양의 100년 넘은 양조장인 '영양 양조장'을 교촌 측에서 되살려 다시 영업을 재개한 곳이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36566632562128&mediaCodeNo=257&OutLnkChk=Y
매우 흥미로운 역사를 가진 술이다.
그런데 정말로, 맛이 훌륭하다. 내 생각엔 백걸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맛이 훨씬 고급스럽고, 단맛 원툴이 강한 백걸리에 비해서 밀을 함유하고 있어서인지 고소함의 풍부함이 차원이 다르다. 단 맛도 고급스럽고, 정말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의 메론 뉘앙스도 매우 훌륭하다.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촌 측에서 막걸리를 선택한 것은 매우 훌륭한 움직임이라고 보인다. 치킨이 보통 술안주인데 보통 맥주와 함께 곁들이지만 누누히 강조하는 것처럼 막걸리도 술 종류로 따지면 'beer'다. 그래서 탄산감이나 캐주얼함을 좀 더하면 확실히 치킨과 함께 이 막걸리도 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 특유의 달달함이 방해될 수 있는데, 막걸리도 얼마든지 드라이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첫 작품의 수준이 이정도라니... 정말 놀랐다. 역시 세상은 넓고,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전성기'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 '발효공방 은하수 8'을 마시면서 느낄 수 있었다.
음식과 술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 역시 지방인 경북 구미의 통닭집에서 시총 2천억의 상장사를 일굴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이라고 하는 정말 존경스러운 기업인 하나를 새로이 알게 된 것 같다. 주가 차트는 좀 응? 싶지만, 그래도 이 시총 2000억원 대에는 안착 하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도 아마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은하수 8은 향 또한 매우 훌륭하다. 병을 딱 열었을 때 부터, 짙고 깊은 향이 풍겨져 나왔다. 밀의 고소함을 필두로 막걸리의 달큰한 향이 퍼지고, 그 뒤를 껍질을 깐 포도향의 상큼함으로 마무리 해 준다. 향이 강해서 좋다. 이 술은 내가 좋아하는 걸쭉한 스타일의 막걸리인데, 14도짜리 전내기 (막걸리 원주)가 아니라 8도 짜리로 희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진하고 농밀한 향과 맛을 가졌다.
질감 또한 완전한 풀바디인데, 묵직하고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전내기 스타일의 두툼함과 끈점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 발효공방 은하수 8의 물타기 전의 전내기 원주를 한 번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탄산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매우 부드러운 질감을 가졌다.
이 술은 사실 '감향주'라는 탁주 제조법을 전수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감향주’는 찹쌀로 빚는 막걸리로 물을 적게 써서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다. 요구르트 제형이고 맛이 달콤해 디저트로 먹기 좋다. 그래서 그런지 8도 짜리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걸쭉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언제 한 번 이 은하수 8과 함께 감향주도 체험해 보고 싶고, 은하수 6도 마셔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귀한 선물로 매우 훌륭한 양조장과 교촌 에프앤비라고 하는 회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도 더 베풀고 나누고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움은 표현해야 하고, 우정과 사랑도 열심히 노력해서 키워 나가야 하는 법이다.
세상은 자꾸만 어두워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빛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발효공방 은하수8' 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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