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안다는 막걸리 애호가들의 술 중에서, 서울 문래에 있는 날씨양조라는 곳에서 나오는 4계절 시리즈가 있다.
봄비, 오로라, 여름바다, 열대야, 신기루, 소나기, 해질녘..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막걸리가 서울 어딘가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 술은 날씨양조 근처에서 운영되는 '오로라 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실제 날씨양조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고 거기서 직접 마시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이 오로라 바에서 술을 마셔볼 것을 권한다.
<오로라 바>
봄비는 아주 특별한 술이다. 개성이 넘치고, 우아하다. 첫 맛에 약간의 쌉쌀함과 함께 시트러스향이 올라온다. 재료를 살펴보니 마른 귤껍질과 한라봉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평소 이러한 귤류의 과일을 좋아하고, 귤껍질을 방향제로 쓰는 나로써는 아주 만족스러운 한 잔이었다.
곱게 익은 막걸리의 단맛과 신맛이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는 단단한 토대 위에, 귤의 과육과 귤껍질의 맛과 향이 더해지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약간, 에일 (ale) 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술이었다. 막걸리가 beer라는 본질을 생각하고, 막걸리가 가진 단맛이 어떤 식으로든 보완을 해 줄 때 훨씬 빛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시도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막걸리 고유의 부드러운 단맛에 이런 씁슬함을 장착한 새로운 새콤달콤함을 더하면 맛이 한 층 복합적이 되고, 더 즐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날씨양조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이미 주요 언론들이 이미 취재를 마쳤다. 역시 모두가 인정하고, 주목하는 양조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존경하는 박순욱 기자님의 기사:
https://biz.chosun.com/distribution/food/2021/11/18/RO2HM4KFFRACPFC3V5DKEFZXMY/
한경 비즈니스의 기사: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110251708b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짝 발효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밍밍함이 느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에서 이미 비판의 목소리가 올라오는 것 같은데, 나 또한 이 밍밍함에 있어서는 살짝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체를 술로써 즐기기 위해서는 살짝 부족함이 느껴졌고, 음식과 같이 먹어야 뭔가 완성되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향 또한 생각보다 잘 뽑혔다고 본다. 9도짜리 술임에도 불구하고 알콜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직 재료의 순수함과 본연의 향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향이 섞이는데 와인과 같이 복잡한 뉘앙스가 아닌, 막걸리라는 술, 그리고 재료인 누룩, 쌀, 한라봉, 귤껍질이 차례 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재미 있었다. 어쩌면 아까 언급했던 발효의 정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이대로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질감은 다소 탄산이 느껴지고 약가 얇은 듯한 텍스쳐 (texture)였다. 역시 혼자 조용히 마시기 보다는, 음식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마시는 것이 좋은 그런 술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로라 바에 같이 간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재미있는 주제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술이 더욱 적절한 질감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날씨 양조의 술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날씨 양조의 봄비는 내가 꼭 제일 좋아하는 타입의 술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적극 소개하고 싶다. 이런 술이 있다고. 그리고 이런 술을 제공하는 멋진 바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 술 문화가 이렇게 하나 하나,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해 나가는 것이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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