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올해 마신 것 중 최고의 와인이 아닌가 싶다.
올해는 가히 내게 있어서 막걸리의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막걸리에 빠져 여러 막걸리를 마셔 보고, 그 외의 술은 오히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느라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힌 지인이 와인을 한잔 마셔보자는 반가운 제안을 해서 이 와인을 만나게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먼저 맛이다. 우선 이 와인은 살짝 담배와 탄닌 같은 씁쓸한 맛이 감도는 가운데, 그와 대조된다고도 볼 수 있는 블랙베리류의 맛과, 상큼함까지 느껴지는 과실향이 풍부한 포도맛이 느껴진다. 와인 품종이 syrah인데, 그래서 그런지 후추나 야생고기같은 스파이시함과 약간 비릿하지만 식욕을 돋구는 맛도 섞여있다. 이런 복잡한 층위의 맛과 고급스러운 씁쓸함, 그리고 뉘앙스의 미묘함은 확실히 전통주에서 느끼기 어려운 와인의 매력이다. 이 하이드 드 빌렌느 칼리포니오 2016 빈티지 와인은 이런 맛이 정말 잘 구현되었을 뿐 아니라 밸런스도 아주 기분좋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살짝 달콤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아직은 와인에서 비싼 것들을 제대로 접하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마신 고가 와인들은 주로 바나 스테이크집에서 취한 채 마신게 대부분이었다) 내 안에서 혼자 이렇게 유유히 즐기기 좋은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나 이탈리아 와인이 좋아 보인다. 스페인이나 남미 와인도 가성비로 가면 정말 좋은 와인들이 많은 것 같다.
여튼 다시 테이스팅 노트로 돌아가자. 이 와인은 향도 정말 죽인다. 향수로 살짝 쓰고 싶을 정도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살짝 병을 타고 흐른 와인 방울을 스킨 로션처럼 손에 발라 쓴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써도 좋을 고급스러운 향을 가졌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향기가 인상적이며, 역시 검은 베리류의 향기가 지배적이다. 간헐적으로 담배 (tobacco)의 향이 올라온다. 전반적으로 맛과 일치하는 향의 구성이 아닌가 싶었다.
조금 찾아보니, 이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 (하이드 드 빌렌 Hyde de Villaine, HdV라고도 한다)가 아주 재미있는 곳이었다.
HdV는 세계적 명품 와인 로마네 콩티(Romane′-Conti)의 오너 오베르 드 빌렌(Aubert de Villaine)이 젊은 시절 미국 뉴욕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는데, 그는 26대 미국 부통령 찰스 페어뱅크스의 조카 패밀라 하이드(Pamela Hyde)를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이 결혼해 프랑스에서 살 때였다. 1999년 파리 와인 전시회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을 시음하던 오베르는 나파 밸리에서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곧 패밀라의 사촌이자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포도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던 래리 하이드에게 연락했다. 농부인 래리는 1978년부터 나파 밸리 남단 카네로스(Carneros)에서 포도 생산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의 포도는 맛이 좋기로 소문나 지금도 여러 유명 와이너리가 앞다퉈 사갈 정도라고 한다.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HdV라고 한다. 역사를 알고 보니, 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이 와인의 최대 장점은 바로 Texture, 입 속에서의 질감이다. 나는 syrah 와인이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질감을 내는 것인줄 몰랐다. 이 silky함의 최고봉은 피노 누아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라 와인의 느낌도 너무 좋았다. 다소 바디감이 강한 편이어서 인상적이고, 액체의 상쾌한 느낌도 좋았다. 포도의 품종이 확실히 굉장히 좋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훌륭한 와인은 정말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다. 앞으로는 와인 모임이라도 하나 만들거나 참가해 볼까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정말이지 사람을 매료시키는 매력이 있는 술이다. 이번에 마신 HdV의 칼리포니오 쉬라도 정말 잊기 어려운 한 병인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와인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은근한 희망을 가슴 한 켠에 두고 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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