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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일기/골드러시 - 금광

중국주식을 볼 때가 왔다

by FarEastReader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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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2025년 초에 이르기까지 나는 줄기차게 달러자산, 그리고 엔화 자산을 확보하고, 한국에서는 KT&G 및 기업은행, 삼성전자, 그리고 2020년대 후반부터 대세를 맞이할 조선주를 살 것을 주장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비트코인을 천천히 사 모을 것을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자산들이 2025년 4월 현재 상당히 올라버렸다. 예외가 있다면 삼성전자와 기업은행 정도인데, 어쩌면 계속 이들 주식에 대해 조금씩 사는 것 이외에는 국내 주식은 솔직히 어떤 것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시 민주당 정권이 예상되면서 한국에서는 부동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이제 무엇을 봐야 할까? 나는 드디어 중국주식의 시대가 왔다고 본다. 

중국의 대표적인 내수시장 업종 중에서 수출이 가능한 것들, 중국의 유틸리티나 은행/금융주 들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향후 2030년에 미국 경제를 규모로서는 뛰어 넘을 중국 경제에 베팅하면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조금씩 중국을 공부했다가 중간에 중국 공산당의 폭거에 실망해서 그만두고, 또 다시 공부를 재개하기를 반복하면서 중국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움직임과, 2015년에 작고한 싱가폴의 국부이자 독재자인 리콴유의 견해등을 접하고는 지금 중국이 쌀 때 확보해 두어야 앞으로 10년 후 확실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중국은 외화 반출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또 중국은 항상 공산당의 정치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시장을 점유해 온 중국의 내수 주식이나 아예 공산당이 소유하는 유틸리티나 은행/금융주 같은 것들은 분명 투자 가치가 있을 것이고 중국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자연적으로 복리의 효과를 누리며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 중국의 내수 주식 같은 경우에는 만약 수출이 터진다면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이미지가 더러워서 수출을 못한다고? 후후... 전 세계 구석구석 어디에나 중국인들은 있고, 이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중국의 소비재들도 이제 슬슬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라. 아울러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공산품들은 모두 중국의 수출품이 아닌가?

 

감정을 빼고 현실을 보라. 뭐든지 비싸면 떨어지고, 싸면 올라가는 법이다.

사기 -화식열전의 '백규'에 대한 이야기

백규는 풍운이 교차하는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났고, 위(魏)나라의 고관을 지낸 바 있다. 그는 동주시대 낙양사람이다. 상업에 뛰어나서 부를 이루었고, 천하에 명성을 얻었다. 사마천은 <<사기.화식열전>>에 그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며 그를 "치생조(治生祖)", 즉 민생을 경영하는데 비조, 즉 상업의 조사(祖師)라고 칭했다. 또한 사마천은 백규는 상업경험이 풍부할 뿐아니라, 그는 이를 잘 활용할 줄 알았다. 그의 경상(經商) 이론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식견도 있었고, 효과도 있는 것이었다.
 
상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백규는 오랫동안 상업에 종사하면서, 경상이론을 확립한다. 그는 경상은 반드시 "낙관시변(樂觀時變)"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주 농업생산의 동향변화와 시장의 시세변화에 주의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시기를 잘 잡아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다른 사람이 취하면 나는 내놓는다"는 경영원칙을 취했다. 매년 양식이 풍성하게 나올 때면 오곡을 사들이고, 비단, 칠등을 팔았다. 양잠으로 비단이 나올 때면 비단을 사들이고, 양식을 팔았다. 그는 민중의 생활필수품을 운영하면 시장이 넓고 판로도 많으며, 다른 사람과 매매가격으로 다툴 필요가 없이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는 시기에 따른 가격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번은 상인들이 한꺼번에 면화를 투매했고 가격이 아주 낮아졌다. 백규는 이를 보고, 수하에게 시켜서 면화를 구매한다는 팻말을 내걸게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재고를 모두 사들였다. 나중에 장마가 오래 지속되면서, 면화수확이 좋지 않았다. 수중에 면화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인들은 사방으로 면화를 찾아다녔다. 이때 백규는 비싼 가격으로 재고를 모조리 팔아넘겨서 큰 이윤을 보았다.

백규는 매 해의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의 예측을 아주 중시했다. 그리하여 기후변화를 열심히 연구한다. 그는 양식생산의 풍년흉년에 대한 규율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2년을 한 주기로 하면, 약간의 변화발전의 규율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매3년마다 큰 변화가 있다. 예를 들의 앞의 3년간이 풍년이었으면, 그후 삼년은 왕왕 가뭄이 든다. 가뭄이 든 후에는 홍수가 난다. 홍수가 난 후에는 다시 풍년이 든다. 풍년과 흉년사이에, 곡물의 가격은 배이상 차이가 난다. 백규는 또한 상업을 하는데 있어서 "취여관(取與觀)"을 확실히 정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기회가 오면 독수리가 사냥감을 채가듯이 과감해야하고 조그만큼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된다. 재산관리에서 우물쭈물하며 관망하는 것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출처: 백규에 관한 '유계흥 (劉繼興)'의 글
https://shanghaicrab.tistory.com/1615309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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